왜냐면
국민 모두를 국제인 만들겠다는영어 공용화 주장과 맥 같아
필요한 사람 집중교육 시키고
대신 문화 콘텐츠 육성이 더 실용적 경제 살리기를 모토로 실용주의를 앞세운 인수위의 영어교육정책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영어라는 외국어 교육이, 새로 탄생하는 한 정부가 과연 사활을 걸고 매달릴 정도로 중요한 정책인지 도무지 분간이 서지 않는다. 여론의 비난으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영어정책은 영어를 모국어로 채택하자는 영어공용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도를 따지자면 그보다 한참 넘어선 주장이다. 이 정도라면 영어 모국어 주장은 당연히 꼬리를 물고 등장할 것이다. 인수위의 영어교육 정책은 새 정부가 주장하는 실용주의 노선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또한 미래를 전혀 내다보지 못하는 발상이다. 영어가 국제적인 상용어라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영어 때문에 지금과 같은 소동을 벌이는 것은 실용주의에 맞지 않다. 작년 10월 한국을 방문한 빈트 서프 구글 부회장은 영어의 미래를 묻는 필자의 질문에 영어의 득세는 더는 계속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청난 정보가 담겨 있는 인터넷은 각기 다른 언어로 바로 해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동 번역기기가 발전해 모든 것을 대신 해 준다는 이야기다. 현재 사용되는 자동번역 기능은 형편없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점차 나아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을 보면 만족할 수준의 자동 번역기기의 탄생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는 구글의 숙원 사업이다. 이러한 번역 프로그램이 개발되면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보다도 더 큰 돈방석에 앉을 수 있다. 영어가 정보 습득 목적이라면 필요성은 당연히 사라진다. 인터넷의 전도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서프 부회장은 인터넷에서 중요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 문화 콘텐츠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는 훌륭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영어 모국어화나 인수위의 영어정책에서 문화는 꽃필 수 없다. 인수위는 영어보다 더 중요한 국제경쟁력이 문화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조만간 중국과 중국의 문화권이 앵글로색슨의 영어 문화권을 넘어설 정도로 강력하게 부상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다. 세계의 힘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예측은 비단 미래학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인수위의 주장대로라면 그때는 다시 중국어를 들고 나올 것이다. 말이 좋아 국제화지 영어의 필요성을 피부로 절감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국민 모두를 국제인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영어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교양도 아니다. 그리고 요즘 초등학생이나 중고생의 영어회화 능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특별히 학원을 다니거나 개인지도를 받은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영어 교사들의 수준이 높은 탓이다. 옛날처럼 판에 박힌 문법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밥 먹여 주는 것은 영어가 아니다. 과학과 기술이며 훌륭한 제품이다. 영어 못해서 훌륭한 제품을 수출 못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일본이 영어 잘해서 경제대국이 된 것이 아니다. 영어 잘하는 필리핀은 여전히 후진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필리핀의 비극은 상류층 대부분이 영국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실용주의라면 과학과 기술, 그리고 문화정책을 펴야 마땅하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나 선진국은 10년, 길어야 20년 미래보고서를 낸다. 30년, 40년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어를 사랑하는 인수위의 새 정부는 5년이 임기다. 고작 5년에 불과한 정권이 불확실한 100년을 미리 뜯어고치겠다는 사고는 고집을 넘어 독선이다. 미래를 전혀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정책이다. 영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인수위의 정책은 국가동원령을 방불케 한다. 필요한 사람만을 골라 집중 교육시키는 것이 오히려 더 실용적 선택이다. 영어의 득세는 오래가지 않는다. 영어에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실용적인 판단이 아니다. 김형근/유엔미래포럼 선임연구위원·전 코리아헤럴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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