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기록 남긴다는 것은 책임 진다는 것‘쇠고기 수입’ 구두 보고만 받은 인수위
기록도 관리도 공개도 안하겠다면
밀실행정의 구태 벗지 못할 것이다 얼마 전에는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더니, 지금은 교육정책을 둘러싼 토론이 뜨겁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매우 중대하면서도 논의 밖으로 밀려난 사안이 있다.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된 어떤 기록도 생산·공개를 하지 않는 구태의연한 밀실행정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걱정하는 국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지난 2월1일 이명박 당선인은 “한-미 에프티에이가 2월 회기 중에 국회 비준을 받도록 노력하고 있다. 농업에 대한 정책은 별도로 세우더라도 에프티에이는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비준 동의안을 상정해 본격적인 안건 처리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이 자유무역협정은 앞으로 국민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칠 협정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국가적인 논의와 의견 수렴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인수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관한 내용을 철저히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쇠고기 문제를 들 수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밝힌바, 인수위는 외교통상부로부터 미국산 쇠고기 검역 문제를 비롯한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한 주요 내용을 공식적인 문서 없이 구두로만 보고받았다고 한다. 인수위는 또 관련된 일부 문건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자료를 공개할 경우 국가의 중대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어서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와 관련한 자체 검토·대책 보고서와 관련해서는 비공개 사유도 언급하지 않은 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록물 생산의무를 명시한 공공기록물법과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정보공개법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기록을 남긴다는 행위는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공공기록물법 제1조가 법 제정의 목적으로 ‘공공기관의 책임있는 행정 구현’을 들고 있는 것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인수위가 기록 생산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행위는, 나중에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을 표명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공공기록물법을 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 관련 기록은 “국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정책, 제도의 결정이나 변경과 관련된 기록물”로서 영구보존 대상에 해당한다. 그런데 현재 인수위는 활동 초기부터 ‘기록하지 않으며, 관리하지도 않고, 공개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록이 없으면 투명 행정은 불가능하다. 특히 지금처럼 관련 기록이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고, 그 전에 생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밀실행정이 지속된다면 나중에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나중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고 애꿎은 국민만 피해를 보는 과거 행태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인수위의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편, 인수위는 공공기록물법과 정보공개법을 준수하여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공공기록물법에 따라 활동이 끝나는 즉시 모든 기록을 국가기록원으로 넘김으로써 구태의연한 밀실행정에서 벗어나 투명한 행정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류신애/한국국가기록연구원 연구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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