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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14 18:37 수정 : 2008.02.14 18:37

왜냐면

블레어 제3의 길을 한국에 적용하는건
위암환자에게 소화제 처방하는꼴
사회복지·일자리복지·학습복지 선순환
한국형 제3의 길을 디자인 할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물갈이해야

통합민주당의 쇄신 작업이 당 노선의 재정립과 인적 쇄신이라는 두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손학규 대표가 표방했던 ‘제3의 길’과 ‘새로운 진보’가 눈에 띈다.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중도·실용 정당’이 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영국 노동당을 상징하는 붉은 장미꽃을 가슴에 달기도 했다. 신선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실용주의를 내걸고 있는 ‘엠비(MB)노믹스’가 녹아 있는 새 정부의 ‘신발전 모델’과 차별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손 대표는 ‘더 많은 기회’ ‘더 높은 책임’ ‘더 넓은 배려’를 새로운 진보의 3대 가치로 제시했다. 영국 기든스 교수가 이론적으로 다듬었던 ‘제3의 길’이 지향하는 가치를 직수입한 것으로 보인다.

‘제3의 길’은 복지병을 야기한 사민주의, 양극화를 만들어 낸 신자유주의를 초월하는 중간의 노선을 지향한다. 영국 노동당 블레어 정부는 ‘제3의 길’을 정책화했다. 고용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연구개발 및 직업교육훈련 등 사회투자정책을 시도하는 가운데 ‘일을 통한 자립 복지’와 노동시장 유연성을 실천했다. 무늬는 제3의 길로 포장했지만 정책콘텐츠는 신자유주의 독트린으로 경도된 셈이다. 그 결과 영국은 현재 서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소득격차가 가장 심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물론 영국은 케인스주의 복지국가를 경유한 덕분에 의료·교육 등 사회복지서비스는 잘 갖춰져 있다. 복지지출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22% 수준에 이른다.

우리는 케인스주의 복지국가를 경험한 일이 없으면서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화했다. 현재 기초적인 사회안전망마저 제대로 구비돼 있지 않은 상태다. 복지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과연 블레어식 제3의 길이 이론적 경험적 적실성을 갖느냐는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블레어식 제3의 길로서 치유하기에는 그 상처가 너무나도 깊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손 대표가 표방한 제3의 길은 ‘위암 환자에게 소화제를 처방하는’ 수준의 패러다임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지표인 ‘인재대국’ ‘능동적 복지’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극화가 저성장을 낳고 저성장이 양극화를 낳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성장-일자리-복지라는 선순환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다. 따라서 글로벌화와 지식기반경제 시대에 혁신과 통합, 효율성과 형평성, 유연성과 안정성을 조합하는 관점에서 ‘한국형 제3의 길’ 비전과 발전 패러다임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이에 기초하여 시장친화적 혁신주도형 성장동력, 인간친화적 ‘3-페어(fare) 복지체제’(사회복지·일자리복지·학습복지)를 선순환시키는 정책어젠다를 개발해야 한다. 이것이 통합민주당이 중도진보 정당으로 거듭나는 ‘새로운 진보의 길’이다. 무엇보다 박정희식 발전모델과 앵글로색슨형 신자유주의 독트린이 기묘하게 결합된 이명박 정부의 ‘신발전 모델’을 넘어서는 길이다.

‘한국형 제3의 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을 실현하려는 사회적 대화와 협의 시스템의 작동이 필수적이다. 산업·기업·노동·복지·비정규직·교육·환경·문화·조세 등 사회경제적 이슈를 둘러싸고 집단과 계층 사이에 발생하는 이해관계 갈등을 조정하는 사회경제적 거버넌스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는 정책과 법·제도를 만드는 정당과 국회가 ‘견제와 균형’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때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통합민주당은 4·9 총선에서 한국형 제3의 길을 이끄는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진정한 ‘물갈이’가 필요하다. 그래야 진보적 가치를 갈망하는 지지층을 끌어 모으는 중도진보 정당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나라당이 200석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한국 대통령제가 과반수를 넘는 거대한 집권당과 포개지면 일반인의 상식과는 달리 국정의 안정보다는 ‘죽음의 키스’가 될 우려가 높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선학태/전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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