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초·중·고교 차례차례로 입시에 종속사교육 시장의 초호황을 가져올 것이다
명문대 중심의 입시 폐단은 더욱 강화
획일적 교육의 대안이 아니라 재앙이 될 것이다
새 정부의 ‘대입 3단계 자율화’는 3불 정책으로 일컫는 고교등급제, 대학별 본고사 등의 제한을 단계별로 대학에 일임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학 관계자들은 학생 선발의 모든 권한이 대학에 주어져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그러나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주장하는 대학이 소수의 명문대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대학 서열 체제에서 대입 자율화는 사실상 소수 명문대들이 성적 우수 학생을 더욱 싹쓸이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학 서열 체제는 그동안 학생들을 성적 서열에 따라 획일적으로 줄세워 왔다. 성적 서열이 미세하게 나눠질수록 1점이라도 성적을 올리려는 입시 경쟁은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수능시험 등급제는 그렇게 1점 차에 울고 웃는 학생들의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자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막 도입된 등급제를 폐기 처분하고 수능 과목도 축소하여 아예 대학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이다.
만일 대입 자율화가 된다면 대학별 본고사 부활에 따라 학교는 물론 학원에서 해당 대학별 진학반이 성행하게 될 것이다. 또한 고교등급제의 부활은 학교를 보다 높은 등급을 얻으려는 대입 준비 하부기관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결국 대입 자율화는 모든 학교를 입시에 종속시킬 것이며, 사교육 시장의 초호황을 가져올 것이다. 또한 성적 서열에 의한 학생 선발이라는 소수 명문대 중심의 입시 폐단을 더욱 강화시켜 획일적 입시교육 문제의 ‘대안’이 아닌 ‘재앙’이 될 우려가 크다.
자사고 100개를 만든다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역시 획일적 입시교육을 가중시킬 정책으로서 중등학교 평준화의 실질적 해체는 물론, 고입 단계의 입시 경쟁을 불러올 것이다. 또한 새 정부의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는 획일적 영어교육을 조장하고, 영어가 불필요한 학생까지 영어 사교육에 몰아넣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오늘날 학교 교육은 인간을 기르는 교육도, 자기실현을 위한 교육도 아닌 획일적 입시교육의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그 배후에는 강력한 대학 서열 체제가 있어 우리 교육의 모든 획일성을 조장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학생 선발의 자율성은 무엇보다 대학 서열 체제를 해소하는 제도적·정책적 보완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나아가 대학 교육의 진정한 경쟁력 역시 대학 서열 체제의 해소와 대학 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통해 가능할 수 있다. 지금은 대학간 경쟁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교육부의 대학 평가에서 서울대가 낙제점을 받는다 해도 삼류대가 되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반대로 지방대학이 아무리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하더라도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일류대학의 서열보다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결국 대학 서열 체제 해소와 더불어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대학 평준화라는 대안이 필요하다. 소수 명문대로 집중되는 획일적 입시 구조를 완화하면서 지방 국공립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국공립대 평준화, 혹은 대학 평준화 방안에 대한 본격적 논의가 요구된다. 새 정부에게 획일적 입시 교육과 사교육 문제 해소를 위한 진정성이 있다면, 교육에서 자율성과 다양성을 펼칠 수 있는 토대로서 평등 교육의 기반이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병호/학벌없는사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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