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코드 인사 방지하겠다며 자신들이 만들어놓고이제와서 코드 맞추겠다 자진사퇴하라니
투기·표절·위장전입에 출중한 사람을 앉히려고 그러나 정부 산하기관 단체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공공기관 운영법’은 지난해 한나라당이 이른바 ‘코드 인사’를 방지한다며 입법 과정을 주도했다.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정부 산하기관 단체장들은 (정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해야 하고, 이 법이 그 기초를 제공해 줬기 때문이다. 국내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20여년 근무한 경험이 있는 나는 주요 정책연구의 주제와 결론이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에서 연구원들이 스스로 ‘연구로봇’이라고 자조하던 분위기를 겪어봤다. 그런데 최근 한나라당과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이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에게 거듭 임기 중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해당 단체장들은 “업무수행상의 문제나 결함이 없는데 왜 임기 중에 나가라는 거냐”며 거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임명한 단체장은 청와대 업무보고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도 들린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장관이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단체장들에게 ‘자진 사퇴’를 요구하려면 그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고 공식적 절차를 통해서 해야 할 것이다. “또다른 코드 인사 아니냐?”는 질문에 유 장관의 답은 이렇다. “같은 일이라고 하는데 그게 과연 같은 일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상도의에 어긋난다.” 무슨 일이 어떻게 다르고, 무슨 장사를 어떻게 하려고 하기에 어긋난다는 설명조차 없다. “이전 정권의 정치색”이란 표현은 더 애매모호하다.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단체장들에게 “자진 사퇴하라”는 말을 하면서, 이토록 애매하게 하는 말이야말로 ‘상도의’에 어긋난다고 본다. 새 정부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는 유 장관의 “자진사퇴 요구”가 곱게 들리지 않는 또하나의 이유는 지난번 조각 때 보았던 인물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위장전입, 병역면제, 자녀 이중국적 등 특수 분야에서 출중한 능력을 지닌 분들이 떠올라서다. 둘러대는 변명도 기가 막혔다. 한마디로 보통 국민들과는 다른 동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기관장들은 부동산 투기나 논문 표절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대통령이나 장관들 하고 말이 안 통할까봐 걱정하는 걸까? 만일 유 장관과 새 정부가 원하는 대로 임기 중에 단체장들을 자진사퇴시킬 수 있다면, 이번엔 그 자리에 또 어떤 능력이 출중하신 분들을 앉히려고 저러는 걸까? 인사청문회를 의식해야 하는 장관급 인사들도 그렇게 골랐는데, 그보다 검증 절차도 간단하고 언론의 관심도 적은 정부 산하기관장은 과연 어떤 사람들을 선택할지 걱정스럽다. 대통령 주변에 부동산 투기와 논문표절 등에 남다른 능력을 가진 것 같은 사람들이 유난히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코드에 따라 국민을 분열시키고 편가르기 한다고 노무현 정부를 비난했으니, 새 정부는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우선, 법으로 임기가 보장된 정부 산하기관 단체장들에게 ‘코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진 사퇴’하라고 뒤에서 압력 넣는 행위를 중지하기 바란다. 그리고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모든 정부 산하기관 단체장들이 법으로 보장된 임기를 채우고, (정권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소신껏 열심히 일해 주기를 바란다. 박인성/중국 항저우 저장대 토지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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