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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3.27 18:52 수정 : 2008.03.27 18:52

왜냐면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소수의 의료 선택권 보장보다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회복으로 건강보험 서비스 내용부터 채운 뒤
재정확보와 운영방안 논의해야

우리나라의 국민 건강보험 제도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급속하게 성장해 왔다. 하지만, 지금 제도에 만족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 특히, 의료부문을 성장동력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불만족의 원인을 낮은 보험 수가와 새기술 적용의 제한성, 소비자 선택권 제한, 그리고 단일 공적 보험조직 독점화와 관료화로 지적하면서 분배의 영역에서 새산업의 영역으로 건강보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함을 설파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환이 과연 국민이 만족하는 미래지향적 건강보험의 패러다임인지에는 의구심이 든다.

국민 건강보험 제도의 궁극적 목표는 형평에 맞고 효율적이며 만족스러운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국민 건강수준 향상에 기여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선진국들에서는 높은 보장성을 근간으로 한 효율적인 제도 운영과 함께 국민이 높은 질의 의료 서비스를 골고루 누리도록 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치료 중심 서비스에서 건강증진, 질병예방, 치료, 재활 등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또한 국민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고용·복지·교육·주거 등 다른 사회 서비스, 보건의료 서비스를 긴밀하게 연계시키고자 한다. 곧, 의료적 패러다임에서 더욱 광범위한 건강 패러다임으로 국가 또는 보험자의 역할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공급자 중심의 의료에서 이용자 중심의 의료로 변화하고 있다. 이용자 중심의 의료를 단지 이용자 단체의 사회적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으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바람직한 의사-환자 관계가 정립될 수 없다. 진료실 내에서의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과 같이 의사가 환자와 이야기할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의료기관 경영이 유지되는 현재의 방식은 해결돼야만 한다. 외국으로 빠져 나가는 극소수의 환자에 대한 걱정과 일부 환자에게 의료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이것만큼 급하지 않다. 가령, 스웨덴에서는 의사가 환자와 상담할 때는 환자의 말을 경청해야 하며, 심지어 진료기록부에 메모를 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정해진 환자와의 상담 시간이 종료되고, 환자가 잠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시간에 상담 결과를 녹음해 놓고, 다시 환자에게 필요한 처방을 이야기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의사와 환자간에 진실한 관계가 형성되려면 제도적 장치가 건강보험 제도 내에서 마련돼야 하며, 건강보험 정책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과 관련해 상당수 사람들이 재정의 불안정성을 이야기하면서 그 해결 방안으로 민간 의료보험의 적극적 활용을 주장한다. 하지만, 민간 의료보험의 적극적 활용이 국민 건강보험으로의 정부 재정 지출을 줄이는 데는 기여할지 몰라도, 더 중요한 국민의 의료비는 증가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됐으며, 이는 외국 사례를 통해서도 증명이 되고 있다. 더군다나 재정 불안정은 유독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100년 이상 운영해 온 선진국들에서 겪는 공통적인 문제다. 건강보험의 재정 문제를 극복하려면, 민간 의료보험이 국민 건강보험의 일정 역할을 하도록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 운영의 기본적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 우선이다. 지출 가능한 재정규모에 따라 서비스 수준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국민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서비스의 내용과 수준을 정해 놓은 다음 재정 확보와 효율적 운영 방안을 고민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돈 중심에서 국민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내용 중심으로 재정 운영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윤태호/부산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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