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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03 19:29 수정 : 2008.04.03 22:12

왜냐면

뉴라이트 교과서 ‘유교적 근왕주의’라 기술했지만
동학은 탐관오리 척결을 강조하고 국왕을 부정했다
뉴라이트는 동학 근대지향성 부정하려 사실 왜곡
역사마저도 새 정권과 코드를 맞추고자 하는가

친일성향 등 편향적 역사 인식을 두고 그동안 논란을 빚어온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 포럼’이 3년여 준비 끝에 대안 역사교과서 <한국근·현대사>를 내놨다.

이 교과서가 ‘동학 농민혁명’에 대해 기술한 내용을 살펴보면 “농민군이 탐관오리나 횡포한 부호 처벌, 노비문서 소각 등의 요구를 한 적이 없다”고 부정하면서 “유교적인 근왕주의(勤王主義)에 입각”한 복고적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한편 종래 교과서나 학계에서 ‘동학 농민운동’ ‘동학 농민혁명’ ‘동학 농민전쟁’으로 지칭되었던 1894년 동학 농민군의 활동을 두고서는 “동학군의 봉기를 ‘농민혁명’이나 ‘농민전쟁’이라 하여 국가체제의 급진적 변혁을 모색한 운동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 대신 ‘동학 농민봉기’라는 호칭이 농민군의 정신적 배경, 사회적 계층, 저항의 양태를 나타내는 데 가장 적합하다”(44쪽)고 썼다.

‘교과서 포럼’에서 기술한 “유교적인 근왕주의에 입각”한 복고적 운동이라는 근거는 무장에서 발표되었다는 창의문 내용을 들어 주장한 것이다. 사실 이 창의문은 유교적인 보편주의에 입각해 창의를 천명한 것에 불과하고, 내용이 대체로 유교적 지식인의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농민혁명의 당위성을 밝혀 당시 양심적인 양반과 지방 향리들을 끌어들이고 창의의 이념을 확산시키려는 목적에서 발표된 선언서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교과서 포럼’ 쪽의 이런 주장은 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을 보수적 개혁가이자 의병장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고부군수 조병갑이 탐관오리였다는 사실 자체마저 부정하는 모순을 낳게 된다. 전봉준 공초(제2차 심문과 진술)를 보면 “전라일도 탐학을 제거하고 또 내직의 매작 권신을 쫓아내면 팔도가 자연히 한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서 탐관오리 척결을 강조하고 있다.

또 농민혁명 전개과정 중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 농민군이 4월26일 금구 원평에 이르렀을 때 관군을 위로하고자 국왕의 하사금 1만냥을 가지고 서울에서 내려 온 선전관 이주호와 수행원 2명을 사로잡고, 이에 앞서 장성에서 왕명을 전하러 왔던 종사관 이효응과 배은환 등을 원평장터에서 참수한 사실이 있다. 국왕이 보낸 사신은 국왕의 대리인으로 국왕처럼 대하는 것이 조선의 예법인데 그들을 참수했다는 것은 국왕 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그런데 어찌 이를 “유교적인 근왕주의에 입각”한 복고적 운동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교과서 포럼’ 쪽의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동학 농민혁명에 대한 이제까지의 민중주의적 해석이나 근대 지향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농민군의 근왕주의적, 보수주의적 성격을 부각시켜 보자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말해 당시 동학 농민군들은 본래 근대 지향적일 수도 없었고, 독자적으로 반란을 이끌지도 못했으므로 혁명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학 농민군이 봉기한 기본 목적 또한 조선의 봉건체제를 혁파하는 것이 아니라 대원군을 받들어 민씨 척족 정권을 타도하는 것이라 동학 농민혁명은 진보적인 운동이 아니라 보수적인 운동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동안 학계에서 동학 농민혁명은 의병전쟁과 3·1 운동, 일제하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민족 저항운동의 효시로 추앙되었으며, 1950∼60년대 북쪽과 남쪽에서 조선 후기 이래 내재적 발전이 있었다는 역사해석에 입각하여 농민혁명의 반봉건적 성격이 크게 강조되었다. 그래서 1970년대 이후 학계에서는 농민혁명이 반봉건,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이므로 근대 지향적 성격을 갖는다고 평가해 왔다. 그럼에도 ‘교과서 포럼’이 역사교과서를 통해서 이런 왜곡된 주장을 했다는 것은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역사 해석은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지만, 그것이 교과서란 이름을 달았을 때는 다르다. 역사교과서 기술 문제는 한 세대의 가치관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며 과거의 사실에 대한 현재적 발언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발언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과거 3공과 5공 같은 역사적 정당성을 결여한 정권은 사라졌지만, 이들에 의해 왜곡되고 전도된 사회적 가치관은 아직도 여전하다. 새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과거의 모든 보편적 가치와 진실을 부정하고자 왜곡 날조된 역사교과서 <한국근·현대사>가 출간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로 봐야할 것인가? 문화와 더불어 역사마저도 새 정권과 코드를 맞추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고 경계되는 마음이 크다.

조광환/(사)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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