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지역할거 ‘묻지마 투표’는빈자의 ‘눈물의 계곡’과 사회갈등을
선거정치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지역주의 수혜자는 끼리끼리 커넥션
계층적 이해관계 대변정당에 표 줘야 18대 총선에서 지역분할 정치의 부활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영남과 호남에서 의석을 거의 ‘싹쓸이’할 개연성이 높고 자유선진당이 충청권을 근거지로 ‘할거전략’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서 선전하고 있는 무소속 및 ‘친박연대’ 후보자들도 당선되면 기존 거대 정당에 입당할 것을 공언한다. 이런 선거 판세라면 지역주의 정치의 부활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묻지마 투표’에 힘입어 ‘깃발’만 꽂아 놓아도 당선되는 선거가 재연되는 것이 아닌지. 물론 서로 다른 지역적 이해관계와 지역 정서가 여전히 상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것이 일정 부분 선거과정에 투영되는 것은 정당정치 발전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지역 패권 정당’들이 등장하면 다른 사회 분열과 갈등이 선거정치에 제대로 반영되는 것을 어렵게 한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에 청년실업, 고용불안, 비정규직 차별, 부와 소득의 양극화 등 ‘눈물의 계곡’이 깊어지고 교육·환경·저출산 고령화 등 사회적 이슈를 둘러싸고 갈등이 분출한다. 따라서 선거과정에서 이러한 사회·경제적 이슈들이 정당 및 후보자들 사이 치열한 정책경쟁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들은 지역 정체성을 털고 자신의 계층 정체성에 따라 정책을 보고 정당과 후보자를 선택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지역에 탄탄한 지지기반을 갖는 거대 정당과 후보자들이 내놓은 공약은 대부분 지역개발 사업들이다. 여기에 유혹되어 지역민들은 고소득층·중산층·저소득층 등 계층 귀속에 관계없이 특정 정당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결정권과 돈을 중앙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현행 중앙집권적 국가체제 아래서 국회의원 의정활동의 주요 테마가 지역 공공사업과 국고지원을 지역에 배정받게 하는 데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지역개발 중심의 공약은 지역주의 정치를 부채질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지역개발 중심으로 국가자원이 배분되면 계층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정책개발과 국가재정 배분이 어려워진다. 참여정부는 지역주의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 정치의 왜곡을 인식했고 지역 중심의 국정 의제(어젠다)를 개발했다. 예컨대, 혁신도시 및 기업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을 통한 지역발전 정책을 실행했다. 이는 지역주의 정치를 극복하는 데 목적을 둔 일종의 ‘이권의 지역배분 정치’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지역발전 정책이 지역주의의 장벽을 허물었다는 어떤 징후는 관찰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중앙정부의 예산과 개발이익을 둘러싸고 특정지역에 연고를 둔 거대 정당 또는 지방정부 사이 긴장과 대립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계층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고 대기업이 독점하면 서비스나 상품의 질이 떨어지고 결국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대기업의 독점체제가 아니라 중소 벤처기업도 살아남았을 때 건강한 기업 생태계가 유지되어 역동적인 시장경제를 통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선거시장도 마찬가지다. 탈지역적 사회·경제적 이슈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벤처 군소 정당들이 살아남아야 한다. 이것이 지역주의 정치를 막아내는 해법이다. 말하자면 지역주의 정치는 ‘탈계층적 지역 중심의 선거정치’를 ‘탈지역적 계층 중심의 선거정치’로 대체해갈 때 서서히 녹아내릴 것이다.
솔직히 과거 지역주의 정치의 수혜층은 정치인·소수관료·기업인·측근들로 구성된 ‘끼리끼리 커넥션 서클’이었고, 다수 지역민들은 그들과의 ‘정서적 허위의식’에 공연히 헛배만 불렀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 ‘지역’보다는 계층적 이해관계를 투영하는 정책비전과 가치를 보고 투표를 행사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선학태/전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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