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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12 20:46 수정 : 2008.05.12 20:46

왜냐면

화장실 낙서를 처벌하면 문화도 함께 죽는 게 세상 이치다. 문자도 막고 인터넷도 끊으면 청계천은 다시 대통령의 공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광우병을 염려하는 학생들을 묶어 두려는 정부의 과잉대응은 다시 학생들을 미치기 직전까지 몰아갈 것이다.

청계천은 이명박 대통령의 공간이다. 자연 그대로는 아닐지언정 물이 흐르게 만들자 사람이 모여들었다. 거기서 얻은 기운이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다. 어둠속에 갇혀 있던 물길 위에 햇살을 드리워준 덕이 컸다. 하지만 명박하게도, 취임한 지 100일을 못 넘겨 청계천은 광우병 쇠고기 정국의 주무대가 되었다. 그를 찍을 수도 없었고 그래서 정치적으로 위협적일 수 없는 10대가 청계천에 등장했다. 그들은 ‘물’과는 상극인 ‘불’을 들었다. 촛불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은 “너나 먹어 쇠고기”를 주문처럼 되풀이 외쳤다. 청계천에서 청와대로 옮긴 대통령으로서는 기가 막힐 사건이다. 어리디어린 학생들에게 광우병이 의심되는 쇠고기 접대를 이런 식으로 받다니, 꿈이라고 해도 믿기 어려운 해괴한 징후다.

당연히 참모들과 참담한 고심을 나눴을 것이다. 청계천을 다시 덮을 수도 없고, 초를 팔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남은 건 학생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하는 일밖에 없다. 그래서 학생들에게서 판단력을 거세하려 나섰다. “이 학생들이 움직이는 건 자신들의 뜻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지금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걷고 소리치고 있다. 이 아이들은 학교에 있고 싶었는데, 불순한 리모컨이 청계천 …, 청계천 …, 입력하고 있다.” 학생들은 졸지에 쇳덩어리 로봇, 인조인간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모였고, 불을 켰고, 소리 높였다. “공부, 공부, 하는데 공부 잘하면 뭐해요? 광우병 걸리면 다 끝인데 …, 연애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어요.” 학생들은 조종당하는 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항변했다.

당황한 대통령과 참모들은 두 번째 칼을 빼 들었다. 학생들이 서로 주고받는 정보 소통 공간을 막기로 했다. 먼저, ‘괴담’을 유포해 사회를 혼란하게 한 죄를 묻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빌미는 ‘17일 휴교’ 문자였고, ‘뽀뽀만 해도 광우병 옮긴다’는 인터넷 풍문이었다. 경찰이 대뜸 학교를 방문해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사이버폭력 수사대도 움직였다. 근거 없는 문자에는 ‘업무 방해죄’가 적용된다고 했다. 대다수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장난 삼아 보냈을 그 문자가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무시무시한 폭력 행위가 되었다.

화장실 낙서를 처벌하면 문화도 함께 죽는 게 세상 이치다. 농담을 건넸더니 정색하고 화를 내면 대화도 끊긴다. 지금 학생들이 원하는 건 떠들 공간과 시간이다. 그동안 학교 급식이 학생들에게 만족스러웠다면, 이렇게 발끈해서 세상에 주먹질할 리 없다. 학생들이 학교와 집에서, 동네에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다면, 인터넷에서 결사하고 청계천에서 따로 만날 리 없다. 영어 몰입교육 파동으로, 4·15 조처로 학교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휴교’ 문자가 유포되었을 리 없다.

싸늘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방책이 촛불을 끄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사회를 향해 이야기를 걸어온 학생들에게 몽둥이질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이다. 학생들은 지하로, 음지로 쫓겨 들어가 숨어 버릴 것이다. 지금 학생들에게는 거짓말이나마 주고받을 시간도 공간도 없다. 새벽부터 심야까지, 교실부터 독서실까지, 학생들에게 허용된 시간과 공간은 일차원적이다. 그런 조건에서 학생들은 문자로 시간을 늘리고, 인터넷에 공간을 지었다. 가상공간에서 쉬기도 하고 학교가 알려주지 못하는 세상도 익힌다. 프랑스 학생 시위가 어떤지, 광우병이 뭔지도 거기서 알게 되었을 것이다.

문자도 막고, 인터넷도 끊으면 청계천은 다시 대통령의 공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광우병을 염려하는 학생들을 묶어 두려는 정부의 과잉 대응은 다시 학생들을 미치기 직전까지 몰아갈 것이다. 물길을 뚫어 인심을 얻었던 대통령이었다. 생각이 흘러 다니는 학생들의 시공간을 가로막으면 민심은 역류한다. 바라건대 학생들에게 그나마 있는 공간마저 빼앗아가지 말라. 그 숨길마저 끊어 버리면 우리들의 미래 또한 질식해 버릴 것이다.


임병구 전교조 정책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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