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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5.26 19:25 수정 : 2008.05.26 22:28

전국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소속 여성 해고 노동자가 26일 서울 구로역 앞 광장에 설치된 철탑 구조물 위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설 것을 촉구하는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불법 고용을 일삼는 최동열 기륭전자 회장이 이 대통령의 중국 순방에 동행하는 것을 비판하고, 즉시 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왜냐면

구로공단의 다른 이름 가산디지털단지
번지르르한 포장과 달리
대다수는 생계유지 어려운 계약직 파견직
여성 저임 노동자들의 눈물로 유지
기륭전자 투쟁의 진실 함께 새겨야

‘천일’이라는 시간은, 어떤 이들에게는 사랑이 쌓이고 관계가 더욱 두터워지는 과정이며, 너무나 더디게 와 조바심치며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한, 그리하여 마침내 천일이 되었을 때 축복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 천일은, 생존과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자 자신을 다잡으며 싸워 온 시간이기도 하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에게 천일은 구속, 손배가압류, 구사대와 공권력의 폭력을 딛고 삼보일배, 단식투쟁, 고공농성 등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벌이며 일터로 돌아갈 희망을 지켜온 절박한 시간이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기륭전자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자화상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97%가 계약직·파견직이며, 대부분이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임금을 받고, 언제 해고당할지 몰라 불안해하면서 비인격적이고 가혹한 노동조건을 견디며 일하고 있다. 노동조합 결성의 권리 같은 것은 들어설 틈조차 없다. 1970∼80년대 구로공단이 있게 한 여성노동자들의 저임금 등 열악한 노동조건은 달라진 것이 없다. ‘디지털’, ‘벤처’라는 번지르르한 말로 포장되고, 겉보기에 세련된 건물들이 들어서 있지만, 이곳 노동자들의 현실은 그리 번지르르하지도 세련되지도 않았다. 이곳의 화려한 변신은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로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서글프지만 당연하게도 이곳의 많은 계약직·파견직 노동자들은 여성이다. 빈곤과 삶의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여성들이 가족의 소득을 보충하지 않고서는 가족의 생계유지가 어려워졌고, 이제 대다수 여성들은 자신의 희망 때문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가정을 잘 꾸리며 편하게 살면 될 여자들이’ 나와서 일을 하겠다니 남성 노동자들보다 적은 돈을 주는 게 당연하다는 뿌리 깊은 논리가 여성들의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가산디지털단지의 공장들은 이런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몇 년 사이에 부쩍 여성들의 일자리가 정부 여성정책의 주요 화두였다. 얼마 전 여성부는 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일자리를 확대한다는 취지로 여성들의 재취업이 용이한 직업들을 선정하여 발표했다. 방과후 교사, 조리사, 고객 상담원, 아이돌보미 … 많은 일자리가 여성들이 가족에서 하던 일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며, 파견직과 계약직이 일반적인 불안정한 노동이다. ‘집에서 여성들이 하던 손쉬운 일’들이니 임금이 높을 리도 없다.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로 포장되고 있지만, 여성들의 저임금, 불안정한 노동을 활용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비즈니스’에 ‘프렌들리’한 정책이다.

그러나 정부가 여성의 일자리를 늘려준다고 생색내기 훨씬 오래 전부터 여성들은 계속해서 일을 해 왔다. 오빠의 학비를 위해서든, 가족의 부족한 생계를 보충하기 위해서든,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든,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여성들은 거의 없었다. 섬유, 전자조립과 같은 분야에서 여성들의 ‘싸고 재빠른’ 손놀림은 멈춘 적이 없다. 중화학공업이 국가경제의 주요 산업이 되면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 그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이것이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이 보여주는 진실이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여성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여겨진 차별을 넘고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여성을 늘 저임금에 두고, 이를 또 전체 노동자들을 분할하는 바탕으로 삼는 현재의 상황을 이겨내는 출발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천일 투쟁 승리는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야 할 승리다.


정지영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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