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99년 ‘연구회 체제’로 개편했지만연구원 과제 수주 영업사원 전락
장비 공용하면서 중복투자 막을 방법
10년 비생산적 논쟁 마침표 찍자 실용정부 출범으로 정부 조직과 함께 연구개발(R&D) 행정체제도 개편됐다. 국가 과학기술을 연구개발하는 정부 출연연들은 크게 기초과학 분야와 산업기술 분야로 각각 양분되었다. 이와 관련 이공계 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지배구조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정부는 1999년 독일식 연구회 모델을 밴치마킹한 ‘정부출연연구기관 설립 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각 부처에 속해 있던 출연연들을 기능별로 모아 선진형 4세대 연구개발 관리시스템인 ‘연구회 체제’로 개편한 바 있다. 유럽 중 강국이라 일컫는 영국은 연구개발의 독립성을 ‘할데인법’에 담아 정부는 총액 예산만 결정하고 연구비의 집행은 연구회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보장받고 있다. 독일 또한 ‘하르나크법’에 의해 4개 연구회를 두고 연구회는 산하 연구소들의 신설, 통합 그리고 해산 등에 관한 권한을 갖고 있으며, 프랑스의 연구회(CNRS)는 산하 다수의 연구소들이 대학과 연계한 초대형 연구회 시스템으로 국가의 성장동력을 견인하고 있다. 지난 참여정부에서는 과학기술 중심국가 구현을 국정지표로 삼고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국무총리 산하에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이관하였으나 이원화된 행정체제로 부처간의 간섭과 통제, 잡무 증가, 기획역량과 이사장의 경영 리더십 공간 축소, 간부들의 다단계적 예산 로비업무 등으로 오히려 독립성과 자율성은 퇴보하고 말았다. 처음 연구회 설립 당시의 지배원칙은 첫째 경쟁원리를 도입한 기술개발, 둘째 기관 운영의 독립성과 자율성, 셋째 연구의 중복투자 차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소속부처와의 종적 연결고리를 끊고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국무총리 산하에 연구회를 배속함으로써 정부 부처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고, 연구기관간의 장벽을 허물어 협동연구를 유도하며, 시설장비와 인력을 공유함으로써 연구개발 예산을 효율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여전히 연구기관간의 높은 장벽 등으로 인력 교류의 경직성, 시설장비 공동 활용의 어려움, 관리자 중심의 예산배분 방식(PBS) 등은 비효율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연구회가 설립된 이래 기능과 역할에 관한 수차례 전문가들의 토론과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보고가 이어져 왔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내용의 핵심은 연구회가 출연연의 후견인으로서 지렛대 역할을 하는 데 미흡하고, 조직과 인력의 조정 권한을 여전히 정부가 갖고 있어 연합이사회는 ‘옥상옥’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문제 개선을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는 독일이나 일본(AIST)처럼 연구회와 소관 연구기관들의 법인격을 통합하여 하나의 독립법인체로 묶는 것이다. 둘째는 정부가 정한 출연연 예산을 이사장에 위임하여 전문가들로 하여금 설계토록 하고, 대신 정부는 성과를 점검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시절 이미 경험해본 바와 같이 물리적 방법을 통한 통폐합이나 인력감축과 같은 즉흥적 처방보다는 한정된 자원의 선택과 집중, 이종기술간의 융·복합과 핵분열이 화학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연구회 체제를 보완함으로써, 지난 10년의 비생산적 논쟁에 마침표를 찍도록 하자.
양윤섭 공학박사·산업기술연구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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