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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05 18:34 수정 : 2008.06.05 18:34

왜냐면

현 상황은 식품 안전성 경시해 온
통치권 전체에 대한 심판
기술을 바탕으로 한
먹거리의 대량 생산·유통 경계해야
식품 안전 보장될 수 있어

미국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든 촛불은 시간이 갈수록 정치권 문제로 변하고 있다. 촛불시위가 먹거리의 정치학을 떠나 일반 정치국면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칫 묻혀질 수 있는 중심 문제, 식품 안전과 관리 문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식품안전에 관한 한 역대 정권들 모두 문제가 많았지만 여기선 현 정권에 국한해서 생각해 보자. 올해 초, 이탈리아산 모차렐라 치즈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되자 우리 정부는 일본과 더불어 모차렐라 치즈 수입을 즉각 금지했다. 세계 어느 나라들보다도 빠른 행보였다. 그렇게 성심껏 국민 건강을 챙길 줄 알던 정부가 미국 쇠고기에 와서는 모든 위험성을 외면한 채 전수입을 결정했다. 결국, 현 정부는 식품 안전에 관해 일관성 없는 전략을 노출함으로써 나라 안팎에 신뢰와 설득력을 모두 잃게 되었다. 다른 수출입 품목과 달리 농수산품 수출입은 고도의 민감성을 지니기 때문에 식품 안전 원칙을 지킬 일관된 전략으로 움직여야 대외적 명분을 세울 수 있고, 그 바탕 위에 외부 압력을 이겨 내고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식품의 안전 관리는 복합적으로 먹거리의 생산 과정뿐 아니라 검역과 살균처리 방식, 보존과 운반 방식 등의 모든 사안에 관계함은 물론이다. 그중 어느 하나, 예를 들자면 살균처리 방식의 안전성 하나만 갖고도 통상 분쟁은 끊이지 않는다. “미국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식품 위생처리를 할 수 있지만 유럽에 그 방식을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생각에 반대합니다.” 지난달 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1997년 이래 수입이 금지된 미국산 ‘염소로 살균된 닭고기’의 해금을 결정하고 유럽에서도 닭고기 살균처리 방식으로 미국식 염소화합물 사용 허가를 고지하자 프랑스 농업장관인 미셸 바르니에가 즉각 반박한 것이다. 유럽연합의 21개국 농업장관들도 즉시 반발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의 결정은 이들 나라로 말미암아 거부될 것이라고 지난달 29일치 <르몽드>가 보도했다. 통치권이 식품안전 체계를 세우고 관리하기 위해선 검역은 물론 이처럼 위생 관리방식의 주권 확보를 밝히는 것이 정상이다. 현재 촛불시위는 역대 정권부터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먹거리 생산과 공급에 걸쳐 안전성을 경시해 온 통치권 전체에 대한 증폭된 심판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 시민들의 유전자 조작 옥수수에 대한 투쟁 국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8년 이래 프랑스에선 동물 사료용 유전자 조작 옥수수 품종으로 몬810 이외의 다른 모든 품종의 재배를 금했다. 그것도 실험 경작이란 명목으로 시작되었는데 재배지가 거대하게 팽창하기 시작하자 유전자 조작 옥수수의 오염 우려 때문에 환경지킴이 운동가들은 그런 옥수수를 뽑아 버리는 저항으로 맞대응하게 되었다. 그들의 갈등은 법정공방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말, 프랑스 정부는 당분간 몬810 재배 금지를 결정하고 올 2월에 재배 금지기간 연장을 발표했다. 농민 운동가 조제 보베는 금지 연장을 위해서 단식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힘겹게 정부의 몬810 재배 금지를 얻어 낸 배경에는 재배가 허용되지는 않지만 2005년 수입이 허가된 식용 몬863 품종이 쥐실험에서 간과 콩팥, 그리고 호르몬에 이상을 일으킨다는 학술 논문 내용이 설득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치권의 이중 플레이는 지난달 말 환경론자들을 격앙시켰다. 프랑스 의회가 유전자 조작 작물의 재배 허가를 통과시킨 것이다. 그러나 80%의 시민 다수는 유전자 조작 작물 재배 허용에 반대하기 때문에 이 싸움은 진행형이다. 현실적으로 한 품종, 한 품종 유전자 조작 작물의 문제를 설득시키기 위해서 인정된 과학의 권위담론 수순을 모두 밟아야 한다는 것은 쉽게 쓸 수 있는 대책이 아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23개 작물에 120가지가 넘는 유전자 조작 품종이 있다고 하는데, 어느 세월에 인력과 큰 예산을 써서 일일이 그 문제를 다 밝힌단 말인가. 삼가고 조심하고 경계하는 태도가 그래서 중요하다.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한 먹거리의 대량 생산과 유통을 경계해야만 식품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집단이 식품의 안전 문제에 얽혀서 진통할 때 정부는 과학적 속물주의 담론을 경계하고 조심스럽게 성찰하는 자세에서 식품 안전관리 전략을 짜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유정 전 미국 터프츠대 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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