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막고계몽의 대상으로만 보는 정부
‘햇병아리’ 무명 선비 비판도
흔연히 받아들인
조선 최고 학자의 자세 되새겨야 조선시대 최고 유학자로 존경받던 퇴계 이황은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던 시기에, 햇병아리와도 같았던 고봉 기대승에게 자신의 성리학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 요즈음 같으면 그저 무시하고 말았을 권위적인 사람들과는 다르게, 놀랍게도 이황은 자신의 성리학 이론을 다시 검토해 보면서 ‘자네가 나를 비판한 이런 부분에 관해 나의 생각은 이렇다’며 정성을 다해 이 ‘무명의 선비’에게 답장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그런 답장에 다시 비판을 담은 편지를 보낸 기대승과의 지속적인 논쟁 끝에 결국 자신의 이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수정하기에 이른다. ‘사단 칠정 논쟁’이라고 불리는 이 논쟁은 임금조차도 존경했던 조선 최고 성리학자가 자신보다 26살이나 어린 햇병아리 무명 선비에게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던 뜻 깊은 사건이었다. 진실된 비판이라면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일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었던 이황의 이 행동은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었다. 그럼 이제 이 깨달음을 가지고 2008년 6월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지금 우리는 국민을 섬기겠다던 정부가 국민의 진실된 비판에 귀를 닫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부정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참을 인(忍) 자를 계속 마음에 써가며 참고 또 참았던 국민은 결국 자신의 권리를 위해, 그리고 정부에 우리의 말을 들어 달라고 호소하고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하지만 그런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불법집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딱지와 함께 물대포와 소화기 분말, 전경들의 방패뿐이었다. 그리고 정부는 왜 국민이 거리로 이렇게 자발적으로 뛰쳐나왔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촛불집회에 쓰인 초들을 누가 어떤 돈으로 구입할 수 있었느냐에나 관심을 두며, 국민의 진실된 비판을 허공속 외침으로 만들었다.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정부에 호소하는 국민들을 선전·선동이나 당해 촛불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로 취급한 것이다. 대통령이 말한 섬김과 포용, 소통이라는 단어는 이미 대통령과 정부의 사전에서 삭제된 듯하였고, 민주주의 역시 슬그머니 지워지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결국 정부는 20% 남짓의 기록적인 임기 초 지지율과 여당 내에서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시점이 되어서야 귀를 아주 조금 열기 시작한 것 같다. ‘여당의 목소리보다 국민의 목소리를 더 먼저 들어주었었다면 …’ 하는 아쉬움이 마음속으로부터 짙게 배어 나온다. 이황은 자신보다 한참이나 낮은 후배에게 존중을 표하고, 자신의 명성에 흠이 생기더라도 틀린 부분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진심을 다해 섬겨야 할 국민을 단순히 계몽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정부가 틀렸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 문제가 쇠고기 협상에서만 나타나는 문제점이 아니라, 앞으로 4년9개월 내리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래서 정부에 ‘무명의 국민’이 한말씀 드리고 싶다. 항상 귀를 열고, 기분이 언짢더라도 정부와 생각이 다른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해 줄 것을. 그리고 섬김과 포용, 소통을 다시 정부의 ‘사전’에 올리고 실천할 것을. 그게 정부가 앞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김남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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