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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6.16 19:44 수정 : 2008.06.16 19:44

왜냐면

관할 경찰서장 ‘허용’ 없으면
일몰 후 집회는 불법 딱지
3·1운동 6·10민주화항쟁도 불법 누명
헌법상 집회의 자유 실질 보장해야

한 달 넘도록 온나라가 촛불집회로 떠들썩하다. 수많은 국민이 휴일은 물론, 평일 저녁에도 시청앞, 청계천, 광화문 등지에 모여 미국산 쇠고기 반대를 외치고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있다. 지난날 정치적 집회와는 달리 이번 집회는 중·고교생, 유모차와 함께 나온 주부,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 말 그대로 남녀노소, 직업 여하를 불문하고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다. 특히 지난 10일에는 무려 70만명 가까운 엄청난 인파가 모였다고 하니, 단순히 계산해 보더라도 그동안 집회에 참여한 연인원이 백만명은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집회’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부족한, 그야말로 ‘국민운동’ 또는 ‘시민운동’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나아가 참가한 사람들 스스로 비폭력, 평화집회를 지키고 있으니, 그 질적인 면에서도 뜻깊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축제와 같은 유쾌한 생기발랄함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지난날의 정치 집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대의제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표상이라고도 평가되는 이러한 자발적, 평화적 집회에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족쇄가 채워져 있으니, 바로 ‘불법집회’라는 누명이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 해가 진 후에는 관할 경찰서장의 특별한 ‘허용’이 없으면 누구도 야외에서 집회를 할 수 없도록 했다. 관할 경찰서장의 ‘허용’이 없다면 그 자체만으로 불법집회가 되고, 그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너나없이 모두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요즈음 일몰시간이 저녁 7시 정도임을 생각하면, 저녁 8시 이후에 촛불집회에 참여한 학생, 주부들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모두 현행법을 어긴 범법자 신분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지난달 이후로 열린 촛불집회에 대해 관할 경찰서장이 단 한 번도 허용한 사실이 없음을 고려하면, 지금까지 이미 백만명 이상의 범법자가 양산된 셈이다. 실제로 300명에 가까운 국민이 집회에 참석하였다는 이유로 연행되기도 했다. 나머지 백만명 이상의 국민은 단지 연행되지만 않았을 뿐, 수사기관으로부터 범법자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집회의 자유 모습이다. 이런 식이라면 지난날 3·1 운동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도, 6·10 민주항쟁도 모두 불법집회란 누명을 벗을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국민이 집회에 참석해 나라 정책을 두고 주장을 펼쳤다는 것만으로 무조건 불법집회로 낙인찍히고, 참가한 국민은 범법자가 되어야 하는가.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지고 집회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음을 명백히 못박고 있다. 비단, 헌법 조항을 들지 않더라도 집회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기본권의 하나로서, 민주정치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천부 인권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이땅의 집회의 자유는 이미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로 사실상 경찰서장의 허가에 따라 제한적으로 행사될 수 있는 권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저녁 6시가 넘어서 일과를 마치는 대다수의 학생과 직장인들에게 집회의 자유를 누리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난센스요, 허울 좋은 궤변이다.

실제로 수많은 집회가 저녁 7시 이후에 열린다는 이유로 관할 경찰서장의 ‘허용’을 받지 못해 열리지 못하거나, 불법으로 치부되는 것을 감수한 채 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현직 경찰 간부조차 현재 집회의 자유는 사실상 관할 경찰서장의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음을 토로하는 마당이니, 헌법상 집회의 자유가 사실상 공허한 외침으로 전락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약 15년 전에 야간집회를 관할 경찰서장의 허용사항으로 한 점에 관한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때도 헌법재판소는 관할 경찰서장의 허용의 의미를 이른바 기속재량, 즉, 헌법상 집회의 자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엄격한 기준에 따라 예외적으로 허용을 금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 사회는 여전히 통제되지 않는 관할 경찰서장의 의사에 전적으로 기대어 집회의 허용 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이다. 사실상 집회의 자유가 아닌, 집회 허가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은 헌법 및 법률에 위반됨은 물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어긋나는 것이니, 집회의 자유는 천부의 권리요, 민주주의를 이루는 근간이라는 헌법 교과서의 글이 무색할 지경이다.

집회의 자유는 관할 경찰서장의 은전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과거 군사독재 시대에 불법집회라는 누명을 쓴 민주화 운동과 6월 항쟁의 열매다. 집회의 자유는 이땅의 독립과 자주, 그리고 민주주의를 가져다 준 고귀한 천부 인권이다.


이현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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