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공무원노조, 미 쇠고기 홍보 지시 거부국책연구원 대운하 관련 양심선언
정권 아닌 민권을 위하겠다는 당연한 주장
왜 이리 신선하게 다가오는 걸까 조선시대 장영실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는 둘 다 공학 전문가다. 둘을 예스럽게 표현하면 어용학자고 요샛말로 하면 국책연구원이다. 둘은 왕실이나 정부에 고용된 전문가다. 어용(御用)은 본래 임금의 필요에 따른 사용이나 대상을 이르는 것으로, 조선시대 한양에 설치된 육의전이 대표적 어용상점이라 할 수 있다. 세종이 발주한 한글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한 용역기관이 당시의 싱크탱크인 집현전이고 정인지·성삼문·최항 등이 책임연구원들로서 한글 창제의 수훈갑이라 할 수 있다. 가치판단이 배제돼 사용되던 어용이라는 말은 이제 대부분 부정적 의미로 통용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자나 권력기관에 영합해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어용학자는 권력자의 비호를 받고 그에게 아부하려고 그의 정책을 찬양하거나 정당화하는 전문가로 통하고 있다. 언어는 사회적이다. 언중들의 가치관과 인식체계가 반영된 것으로, 이러한 변화의 근본원인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의식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공무원은 국민 머슴이다. 국민의 세금을 받으니 주인인 국민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고금이나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서양에서도 공무원을 공복(civil servants)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공무원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당신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먹고사니 국민을 위하여 일해야 한다’는 말이란다. “내가 밤늦게까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다니.” 올해 초, 구조조정 대상이 된 정부 부처의 과장이 열변을 토했을 때, ‘그건 인정하는데, 누굴 위해 일했는데’ 이런 반박이 목구멍까지 나올 뻔한 적이 있다. 그 공무원은 국민으로부터 배신당한 것이 아니었다. 섬기던 정권이 명을 다했을 뿐이다. 국민은 세금을 지급하고 공무원으로부터 공공재라는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이다. 거래에 있어 공급자가 배짱을 부리고 힘이 있는 형태를 ‘공급자의 시장’이라고 한다. 소비자 주권이니 소비자가 왕이다 하는 것은 ‘수요자의 시장’일 때 성립한다. 공급자의 시장은 사회주의나 독재국가에서 나타난다. 정부가 국민 위에 군림할수록 국민은 시혜와 통제의 대상이 된다. 반면에,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갑으로서의 국민의 말발이 세지고, 공무원은 을의 처신을 기꺼이 하는 경향이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2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홍보 등 부당한 업무지시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공무원 조직이 전국적이고 집단적으로 행정거부 운동을 선언한 것은 처음이어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앞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김이태 책임연구원이 자신이 관여하던 용역사업이 실상은 한반도 대운하를 위한 논리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양심선언을 한 바 있다. 그들은 국민의 권리와 민복을 위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이자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말이 듣는 사람에 따라 지당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정권과 국가에 대한 구분을 명쾌하게 판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정 정권을 위하여 일을 했다는 자체만으로 비난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정치학자들은 정권이 두 번 정도 바뀌는 것이 민주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전제라고 한다. 우리도 이제 두 번째 정권 교체를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누구는 시세에 영합하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할 것이고 어떤 이는 소신을 가지고 국민의 뜻을 섬기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나의 정권이 아니고 대한민국 전체가 지속 가능하게 잘되는 길이 무엇일지를 우리 모두 고민하고 행동할 일이다. 조승헌 서울 마포구 상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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