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대출실적·자료 이용 만족도로 평가하면베스트셀러 무조건 많이 구입하면 된다
많이 읽히진 않더라도 있어야할 양서 구비
그게 도서관의 역할이다
도서관이 양서를 거부하면
양서를 내려는 출판사도
양서를 내려는 저자도 씨가 마를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산하기관의 업무를 성과 중심 조직문화로 바꾼다며 성과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업무별 성과지표를 만들고 있다. 직속기관인 22개 서울시립도서관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공공성의 상징인 도서관 업무영역에 똑같이 성과잣대를 들이댄다는 건 많은 검토가 필요할듯 싶다. 성과 추구가 도서관이 추구하는 공익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업무인 ‘자료수집’을 예로 들어 보겠다. 도서관은 연초에 ‘주제별 장서구성 계획’을 세운다. 사람이 한 가지 음식만 먹으면 탈이 나듯 도서관도 주제별로 균등한 장서비율을 맞춰서 시민들에게 책으로 된 영양을 골고루 나눠주기 위해서다. 까다롭긴 해도 그리 어렵지 않은 ‘주제별 장서구성 계획’을 성과지표로 삼은 것은 그것이 도서관의 공공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제별 장서구성 계획 달성’은 성과지표로 ‘보통 이하’ 평가를 받았다. 평가 점수를 중시하면 더 직설적인 성과지표를 개발해야 하고 ‘구입도서 대출실적’을 따지거나 ‘자료 이용 만족도’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읽힐 만한 책을 비치하는 것은 공공도서관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공공도서관이 성과를 달성하느라 대중영합을 추종했을 때 나타날 후유증을 생각해 보자. 대중은 ‘한국인이 읽어야 할 고전 100선’이 아닌 ‘해리포터 시리즈 100권’에 조응하기 마련이다. 도서관은 대출이 많이 될 것 같은 책을 많이 구입할수록 우수한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일을 잘했다고 인정받으려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베스트셀러를 무조건 많이 구입하면 된다. 궁극적으로 서울시립도서관의 우수도서관은 베스트셀러를 많이 비치한 곳이 되는 것이다. “팔리진 않아도 내야 하는 책이면 출판한다.” 어느 출판인의 말이다. 비단 그분뿐 아니라 많은 출판인들이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돈을 벌기 위해 출판업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책다운 책’ 한 권 내놓으면 다행이라는 순진무모한(?) 마음으로 투신하는 분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공공도서관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을 구비해야 함은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비록 많이 읽히진 않더라도 있어야 할 당위를 가진 양서를 구비하는 것도 도서관의 역할이다. 어떤 출판사가 시장성이 없어도 세상에 빛을 봐야 할 책을 출판했다면 그런 책일수록 도서관에서 열심히 사줘야 한다. 어느 하나 양보할 수 없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서울시립도서관은 이른바 팔리는 책만을 구입해야 한다. 게다가 성과는 상향 지향성으로 되어 있으니 해마다 더욱 더 팔리는 책만을 구입하고 대중의 기호를 철저하게 쫓을 수밖에 없다. 도서관은 성과에 도움 안 되는 양서를 외면하고, 좋은 책을 내려는 출판사는 점점 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생각을 담아 책으로 엮으려는 저자들도 줄어들 것이다. 또 한 경우를 보자. 자료실의 경우엔 성과지표로 ‘작년 대비 대출권수 증가’를 설정한 곳이 많다.(사서들의 자의는 아닐 것이다. 그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흐름에 충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의 성과를 대출 증가량으로 측정한다면 현장에선 해마다 전년을 웃도는 대출권수를 채우려 갖은 편법을 동원할 것이다. 나아가 독서관련 국가 통계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정책수립은 물 건너 가게 된다. 성과주의란 이런 것이다. 더 나은 결과를 낳고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다.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적 발상이 공공도서관마저 파행으로 몰고 있다. 무서운 나라다. 장성우 사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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