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8개 교육학회 “자기표절 아니다” 판정문단 차례만 바꿔 베낀것이나
논문 절반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나
자기표절이 아니라면 무엇이 자기표절인가
하루 이틀만에 신속하게 결정한 것은
스스로 관행속에 기생하는 부끄러운 짓이다 나는 땅을 가지고 있다. 그 땅을 한 사람에게 팔았다. 그런데 팔았던 땅을 몰래 다른 사람에게 또 팔았다. 사기다. ‘자기표절’이란 바로 팔았던 땅을 몰래 여기저기 파는 파렴치한 행위이다. 정진곤 교육과학문화수석의 자기표절이 논란이 되고 있다. 대학교수들이 공직에 거론될 때마다 표절 논란이 벌어지다 보니 사람들은 관행쯤으로 치부하고 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치명적인 비리다. 교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는 연구와 교육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인 연구행위가 부적절하다는 건, 기업가가 주가를 조작한다든가 공무원이 뇌물을 받는 비리와 동일하다. 정진곤 수석의 표절 시비 대상이 된 여러 논문 가운데 두 편, 그리고 전혀 거론되지 않은 논문 두 편을 검증했다. 이미 거론된 논문 두 편(‘대안학교에서의 자유의 의미와 비판적 분석’(1999), ‘대안학교 교육이념 및 내용에 대한 비판적 분석’(2000))은 연구 목적, 내용, 방법, 결론이 거의 흡사하다. 그뿐만 아니라 16쪽 중 무려 7쪽이 동일하다. 나머지 9쪽 중에서도 동일한 문단이 곳곳에 있다. 그리고 ‘열린교육’에 관한 두 편의 논문(‘현행 열린교육의 교수-학습 방법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 탐색’(1997), ‘한국에서의 열린교육 운동의 전개과정과 특성’(1999)) 가운데 1999년도 논문의 결론 4쪽은 1997년도 논문에서 문단의 차례만 이리저리 바꾼 채 동일하게 베꼈다. 그런데 한국교원교육학회 등 8개 교육학회가 학회장들의 공동명의로 정진곤 수석의 논문이 “표절·자기표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들은 정말 논문을 읽어나 봤을까. 그들은 보도자료에서 “자신의 아이디어와 연구결과 일부를 다른 글에서 밝혀” 표절이 아니라고 했지만, ‘열린교육’에 관한 1999년도 논문에서는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용 또는 참고문헌을 달지 않았다. 2000년도에 쓴 ‘대안학교’ 논문 역시 3장만 인용 여부를 표시했을 뿐, 그대로 베껴 쓴 결론이나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는 인용 표시가 전혀 없다. 그리고 무려 논문의 절반을 그대로 옮겨 쓰고도 자기표절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인가. 또 자기 관점 확산을 위해 “반복 표현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 “평생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확산 또는 발전 과정이란 주요 논리가 같음을 말하지 동일한 글을 베껴 쓰는 걸 말하지 않는다. 학회지 이외의 간행물에 중복 게재하는 것은 ‘사회봉사활동의 일부’라고 말하니 그런 글들은 제외하고 내가 본 4편의 글은 모두 학회지 논문이다. 학자연하는, 게다가 교육자연하는 이들이 모여 내린 결론이 참으로 무식하거나 낯뜨겁다. 학회장들은 정진곤 수석에게 면죄부를 발행했다. 누구도 쉽게 반박할 수 없도록 전문가의 이름으로. 표절 논란이 일자 하루이틀 만에 결론을 내리는 그들의 결단은 유례없이 신속하지만 무식하거나 또는 모든 걸 관행으로 치부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 기생하는 낯뜨거운 짓이다. 이경숙 경북대 사범대 교육학과 강사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