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광화문 광장 동상 1순위 단연 세종조선 최고 성군에다 완공도 재임기에
왼쪽에는 한양 천도 주역 정도전
오른쪽은 이견 없을 이순신 장군을 요즈음 서울 시내를 보면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마음을 편하게 한다. 복원된 경복궁과 청계천이 있어 간혹 짜투리 시간이 남아 어떻게 보낼까 걱정 안 해도 되어 한결 시내 나들이가 가벼워졌다. 앞으로 광화문 광장(2009년 6월 완공 예정)이 조성되어 육조거리에서 새로운 서울시청 청사(2011년 2월 완공 예정)까지 거닐 수 있게 된다면 역사가 살아 있고 과거와 현재가 조화된 서울의 상징거리로 손색이 없을 것 같아 기대가 크다. 그런데 최근 서울시는 광화문 복원공사(2009년 12월 완공 예정)로 새로 조성되는 광화문 광장에 누구의 동상을 세우느냐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세종대왕을 가운데 모시고 좌측에 삼봉 정도전과 우측에 충무공 이순신 동상을 모시는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기존 충무공 동상에 대해서는 누구도 큰 이론이 없다고 보고, 역사학자로서 새로 세울 두 동상에 대해 간단히 그 당위성을 개진하고자 한다. 먼저 세종대왕은 그의 공적으로 보아 조선왕조를 포함해 한국의 역대 왕 중 가장 존경스런 임금으로 우리 모두의 의식에 자리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더구나 ‘광화문’이란 명칭이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경복궁 건립(태조4년, 1395년) 당시에는 오문과 함께 보이다가 세종 13년(1431년) 4월에 완성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중국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1420년, 명나라 영락제 18년에 지었는데 큰 화재로 두 차례나 소실되다가 현재의 모습은 청 순치제 4년인 1647년에 재건되었음)과의 동명을 피하여 이때부터 명칭이 광화문으로 본격 변경되지 않았나 한다. 일찍이 세종대왕 동상이 세종로에 세워져 있었지만 1960년대 당시 시대 상황으로 덕수궁 안으로 옮겨져 있으니 40여년 만에 제자리에 모시는 것도 후손된 도리가 아닌가 한다. 조선왕조 건국의 일등공신인 삼봉 정도전(1342∼1398)은 오늘날 서울인 당시 한양으로 천도 결정 과정(1393년 8월13일∼1394년 11월29일)과 천도 이후 한양 건설을 이끌었다. 그는 새 왕조의 첫 도읍지에 지을 궁궐 터와 종묘·사직·관아·도로·시전(상가)을 계획했다. 또 궁궐(경복궁) 이름과 여러 전각 명칭(근정전·사정전·강녕전 등)뿐 아니라, 성곽 내외를 5부(동·서·남·중·북)·52방(숭교·인달·관통·광화·정선방 등)으로 구획해 이름 짓고, 4대문(흥인·돈의·숭례·숙정문)과 네 개의 소문(혜화·소의·광희·창의문)을 인의예지신을 인용해 이름 지은 인물이다. 특히 신도궁궐도감으로서 한양의 도시계획을 지휘하여 오늘날 서울 4대문 안에서 가장 중심도로인 6조(曹) 거리, 즉 오늘날 태평로와 종로의 골격이 이때 결정되었다. 태평로에 해당하는 광화문 남쪽 6조 거리는 길이가 600m, 가로 폭이 60m였으며, 좌우로 6조와 삼군부를 비롯한 중앙관서들이 들어섰다. 광화문에서 현 교보문고 쪽인 왼쪽에 의정부, 이조, 한성부, 호조, 기로소가 자리잡았고, 맞은편인 정부중앙청사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는 예조, 중추부, 사헌부, 병조, 형조, 공조가 같은 높이, 같은 규격의 지붕으로 600m에 걸쳐 나란히 이어졌다.
1994년 정도(定都) 600주년을 맞이해 그를 기리는 행사가 있어 오늘날 종묘 공원 내 서울을 기리는 서울 8경시가 새겨진 시비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 제대로 경복궁과 광화문이 조성되어 ‘광화문 광장’이 들어선다면 마땅히 정도전을 포함한 세 분의 동상을 제대로 모셔야 한다고 본다. 동상의 위치는 최대한 현재의 여건을 활용하여 세종문화회관 전면 주변에 세종대왕 동상을 세우고 그 좌우에 문인과 무인의 자리 배정의 관례에 따라 좌측에 삼봉 정도전 동상을, 우측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우면 격에 맞을 것 같다. 아마 이렇게 조성한다면 런던의 명물인 넬슨 동상(입상, 46m 화강암, 높이 5.5m 조성)이나 워싱턴 한복판 링컨기념관에 있는 링컨 동상(좌상, 너비 6m, 높이 6m 조성)과 비교해도 그 역사성이나 의미로 볼 때 훨씬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거리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원명 서울여대 사학과 교수·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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