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독립은 신생국에 어울리는 말유구한 역사 부정하는 자기비하적 용어
불행했던 근대사 35년은 예외적 기간 광복절을 맞아 광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모든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행하며 책임지고, 우리 운명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주권을 회복한 날이다. 주권을 지키는 것은 절대 명제이며 모든 것을 걸고 지켜야 되는 절대선이다. 역사의 아픔은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하며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이의도 있을 수 없다. 한 세기 전 서구열강은 산업혁명을 완성하고 시장과 자원확보를 위한 경쟁적 식민지 쟁탈전에 들어갔다. 일본은 재빨리 문호를 개방하고 국가체제를 정비하여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이 국가 대열에 합류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근대사의 격변기를 준비할 겨를도 없이 맞이했고 동아시아에서 발생한 새로운 힘의 불균형 속에서 불행히도 서구를 따라 제국주의 노선을 추구한 일본의 먹이가 되었다. 이를 일제강점기 혹은 식민지배시대라 부른다. 이 민족사의 암흑기는 1910년 8월29일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만 35년이 덜 되는 기간이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보기 드물게 긴 역사를 통해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지켜온 나라다. 민족의 동질성과 고유의 언어와 국가체계를 긴 세월 동안 소중히 지켜왔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세계사 속에서 이민족 지배를 받은 경험이 거의 없는 나라다. 몽고가 유라시아를 휩쓸 때에도 우리는 예외적으로 독립 국가를 유지하였다. 긴 역사를 통하여 왕조가 바뀌고 국경의 변화는 조금씩 있었을지언정, 우리는 한번도 국권을 잃어 본 적이 없다. 불행했던 근대사 35년은 우리 역사의 예외적인 기간이다. 굳이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중국 역사에서는 북쪽과 서역에서는 수 많은 이민족 왕조가 등장하여 중국을 지배하거나 압박하였다. 이중 몽골인의 원은 97년간, 여진인의 청은 276년간 중국을 통치하였으며 오늘날 중국의 강역을 형성하었다. 과연 중국은 이러한 극심한 역사의 굴곡에 대하여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하는가? 러시아도 몽골에 의해 무려 240년간 지배를 받았다. 러시아는 이 기간을 역사의 암흑기로 간주하지만 독립이라는 말은 입에 담지도 않는다. 유럽사는 서로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반전을 거듭하는 역사의 연속이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처지가 되었었지만 유럽의 국가들은 상대국에 대하여 독립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우리가 20세기 초엽 35년의 악몽을 벗어난 지 이제 63년이다. 이것은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보면 짧은 한 부분이다. 독립은 소중하지만 그 단어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이 말이 어딘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독립을 했다고 하면 왠지 우리의 찬란하고 장구한 역사가 송두리째 부인되는 느낌이 든다. 독립이라는 말은 신대륙이나 이전에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지역에서 태어난 신생국에 어울리는 말이다. 이들에게 독립 이전에는 역사다운 역사가 없으며 역사는 독립 이후에 있을 뿐이다. 우리 경우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8·15는 우리에게 독립이 아니라 주권의 회복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주권의 회복을 뜻하는 광복이 좀더 적절한 표현이다. 독립이라는 말은 우리 역사의 깊이와 정기를 흐려놓는 말이며 자존심을 훼손하는 말이다. 독립은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부정하는 자기비하적인 용어다. 독립기념관의 이름이 마음에 걸린다. 독립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 이해가 얕은 외국인에게는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우리 입으로 독립을 강조하면 이들에게 비치는 한국의 역사는 일천해 보이고 일본의 존재는 더욱 커 보일 것이다. 독립이라는 당치 않는 말은 이제 벗어버리자. 독립기념관의 이름을 바꾸고 싶다. ‘광복기념관’이나 ‘광복관’으로 새 이름을 지어주면 어떨까? 아니면 잊지 말자는 의미로 불망관은 어떨까? 순수한 우리말로 좋은 이름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걸맞게 역사의 긍적적인 면을 발굴하여 홍보하고 후세에 가르치자. 올림픽은 우리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근대사적인 시각과 상처에서 벗어나서 이제 우리의 사고를 한반도 속에 가두지 말자. 새로운 세대가 자라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폭넓은 지식과 안목과 능력을 갖춘 세계화된 새로운 세대가 자라나고 있다. 우리의 앞날은 밝다. 어두운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세계를 향해 가자. 우리의 다음 세대에 진취적인 기상을 가르치자. 권순일 대구보건대 임상병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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