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백주대낮, 아들같은 경찰에 불심검문 당하다니학살정권의 치떨리는 ‘가방 뒤짐’ 어제일처럼 2008년 8월18일 월요일 오후 3시30분 무렵, 서울 지하철 1호선 ‘동묘 앞’ 환승지점. 정복 차림의 젊은 경찰이 내게 신분증을 보이라고 한다. 어이가 없어서 “뭐요?”라고 쏘아붙인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 쉰 넘은 사람이 아들이나 될 법한 경찰에게 그런 대접을 받으니 어처구니없는 것은 당연지사. 그 친구 대답이 걸작이다. “요즘엔 얼굴 험한 사람 안 잡습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환하게 비어버린다. 도대체 이게 뭔가! 잠시 뒤 경찰에게 말한다. “당신 신분증 먼저 봅시다.” 언제부턴가 나는 경찰이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면 반드시 경찰 신분증 먼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몇 마디 투덜대면서. 그자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난 다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공무원증’을 제시한다. “참, 말이 안 나오네. 80년대로 돌아가는 거요?” 이 말에 경찰은 “죄송합니다” 한 마디로 끝이다. 1999년 러시아에 갔을 때도, 2003년에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도 나는 불편하였다. 무시로 여권을 보자는 러시아 경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적 관료주의의 폐해였다. 그래선지 지금도 러시아에 가고 싶지 않다. 아무 때나 신분증을 요구하는 제복과 공안당국의 서슬이 너무 싫은 것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학살정권 아래 치가 떨리도록 경험했던 경찰과 제복과 백주 대낮의 가방 뒤짐이 어제 일처럼 눈앞에 밀려오기 때문이다. 날이면 날마다 정부와 최고 권력자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선진국에서 과연 이런 식으로 인간의 영혼을 짓밟는가. 아직 낮달도 뜨지 않은 시각에. 어떤 비상시국도 아닌 상황에 제 나라의 나이 든 백성을 이렇게 대접해도 된단 말인가. 베를린과 파리, 브뤼셀에서 나는 한 번도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 혹시 모를 일이다. 일본이나 미국 경찰이 자국민들에게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광장에서 무섭게 눈을 부라리고 있는지. 차라리 박정희-전두환의 제복과 경찰력과 공안정국은 받아들일 수 있겠다. 왜냐면 그이들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아니라, 체육관 대통령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게 뭐냔 말이다. 21세기 광명천지에서 우리가 뽑은 대통령과 그 수하들이 만들어내는 살풍경을 어쩌란 말인가. 이전투구가 싫어서 침묵하는 사람들까지 거리 거리로 불러 모은 자들이 누구인가. 그저 소시민으로 편안하게 살고자 하는 시민들을 적으로 몰고 가는 자들이 정녕 누구냔 말이다. 세상이 온통 요지경 속이다. 광우병 때문에 초등학생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판에 독립 국가의 총리와 여당 정책위의장이라는 자들은 떼거지로 모여 앉아 큰 나라 쇠고기 안전하다고 시식회를 열었다. 촛불 든 사람들 사냥감 몰듯 잡아들이고, 백골단 부활시켜 80년대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역사 교과서를 새로 만들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광복절’을 희한하게 개명하려고 한다. 날이면 날마다 깊은 한숨을 토해내야 한다.
이래서는 대한민국이 두 동강 난다. 남과 북이 분단되어 있는 우리나라 정치권력은 무엇보다 국민 통합에 진력해야 한다. 그것에 기초하여 정책과 미래 전망이 만들어져야 한다. 특정 지지층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고른 지지를 얻으려는 자세와 투철한 역사의식이 절실하다. 여기에 더하여 국민에게 겸손하게 다가가고 그들의 고통과 슬픔과 절망을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일찍이 노자는 최고 정치지도자와 정치집단에게 이렇게 갈파하였다. “백성 위에 있고자 한다면 겸손한 말로 자신을 낮추고, 백성 앞에 서고자 한다면, 백성 뒤에 서야 한다.”(도덕경 제66장) 김규종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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