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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하수정 <>buzzar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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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비록 경제사범으로 첫 수감됐지만패자부활전 기대하듯 사면 대상 촉각
사면 원칙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내 주변엔 아무도 사면된 사람이 없다
정의의 여신은 힘없는 약자와 눈 맞출 수 있을까 현재 서울구치소에서 수형생활 중인 사람이다. 죄를 저질러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자가 무엇인가를 평가하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염치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주저하다가 펜을 들었다. 바로 8·15 사면에 대한 유감 때문이다. 34만명이 사면·복권되었고 이 가운데는 사회의 이목을 끄는 명망 있는 경제·정치 인사들이 적잖이 포함됐다. 거창한 명분을 앞세운 이번 사면에서 일반 형사범들은 과연 얼마나 그 혜택을 누렸을까. 34만명이라는 숫자 뒤에는 징계공무원, 선거사범, 경제인 등을 제외하면 일반 형사범은 불과 몇 천명에 불과할 것이라 생각된다. 혜택을 받지 못한 투정과 불평을 하고자 하는 것도, 대기업 총수들에게 편중됨을 비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단지 정부가 어떤 원칙으로 ‘사면자 선정의 원칙’을 가졌는가를 짚어보고 싶어서다. 대기업 총수와 관계자들에 대한 사면은 그들의 과거 공적이나 앞으로 예상되는 기여도를 생각해 ‘관용의 효과’가 ‘징계의 효과’에 비해 크다고 여긴 걸까. 정부는 기소된 사건의 배임액이 천문학적 숫자일지라도, 시장판에서 격투를 벌여도, 아직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는 중이라도, 그가 경제인이라는 이유로 관용의 원칙을 베푼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배려심 많은 정부가 일반 형사범, 그중에서도 경제사범들에게는 어떤 원칙을 적용했을까. 비록 이곳 경제 초범들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부’나 ‘기업’도 없었고 누구들처럼 ‘면죄부’와 맞바꿀 만큼 사업을 크게 성공시켜 사회 기여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세금 꼬박꼬박 챙겨 내고, ‘국민연금’이다 뭐다 줄기차게 납부하며 살았다. 소득비율로는 그분들 못잖게 국민의 의무를 다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록 사회에 대한 과오를 행하여 징계를 받고 있으나 아직은 배우자·자식·부모로부터 사랑받는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것이다. 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속한 가정을 위해서라도 따뜻하고 사려 깊은 관용의 손길을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마치 올림픽 종목별 결승전에 진출하는 것만큼이나 험난한 선별과정을 통한 탈락의 아픔이었다. 사면 예상 보도를 보며 우리에게도 관심을 가져주겠구나 하는 참으로 근거 없고 순진하기까지 한 희망을 이곳 사람들과 담장 밖의 가족들만이 가슴속에 품었다. 어떤 원칙을 적용했는지 아무도 알려주고 설명해주는 사람조차 없다. 몇 명이 혜택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 있는 다른 경제사범(초범)들 중 이번에 사면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소리를 정리해보니, 일반 형사범에게는 경제사범 중 초범인 자로 형기의 2분의 1 이상이 경과한 자를 기본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몇십만원이라도 벌금 고지가 있는 사람, 추가 재판이 진행 중인 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으로 처벌된 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알고 있다.
일면 타당한 사유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고소인의 주장에만 동조하여 무분별하게 특경가법 혐의로 기소가 남발되고, 수형 중인 자에게 제기되는 추가 사건은 ‘예단’을 가지고 기소를 함으로써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사면에서도 이들은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좌절하고 있다. 법과 원칙의 적용을 강조하기 앞서, 적용할 ‘법’과 ‘원칙’이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수준으로 투명하고 일관성 있게 재정비되고, 그 적용 또한 공정해야 할 것이다.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는 기회의 공평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같이 잊혀진 사람들은 패자부활전에 참가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정의의 여신은 힘없는 약자들과 눈이 마주치면 부끄러울 것이다. 이곳에서 나가 하루라도 빨리 이민 가고 싶다. 이것만이 ‘사면’에 대한 유일한 저항인 것 같다. 김의식(가명)/경제범죄 재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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