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지난 26일치 왜냐면에 ‘국어교과서도 좌편향이라고 할텐가’라는 글을 썼던 국어 교사다. 대통령은 그날 그 글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교과서 수정 문제는 좌편향을 우편향으로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좌도 우도 동의하는 가운데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게 아니라니까요, 또 잘못 짚었어요!’ 하는 말이 순간적으로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국민들은 ‘좌도 우도 동의하는’이 아니라 ‘좌도 우도 배제하기’를 바란다. 대다수 국민들은 ‘좌’가 뭔지 ‘우’가 뭔지 모른다. 아니, ‘좌’하고도 ‘우’하고도 상관없다.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좌’와 ‘우’ 때문에 죄없는 국민들이 수없이 죽어나간 일을 겪은, ‘좌’도 ‘우’도 지긋지긋한 세대들이 아직도 살아 있다. 우리 문학사에는 좌·우 대립으로 형제끼리, 어린 시절 동무끼리, 심지어 사돈끼리 싸움을 해야 하는, 죽이기까지 해야 하는 비극을 다룬 작품들이 수도 없이 많다. 또한 ‘좌’ ‘우’ 어느 한쪽에 줄서기를 강요당하는 개인의 비극을 다룬 작품도 많다. 최인훈의 <광장>, 윤흥길의 <장마>, 황순원의 <학>, 오상원의 <모반> …. 소설은 역사책이나 기사나 보고서에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속사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글이다. 우리나라 정치하는 사람들은 소설책도 안 보고 사는가? 청소년 때 보아야 할 필독도서들인데 말이다. 요즘 대통령 하는 일을 보면 윤흥길의 <완장>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작은 권력을 손에 넣고서 되나 안 되나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그것을 휘두르는 소인배의 작태를 풍자한 소설이다.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다. 왜 역사교과서 문제를 대통령이, 정치하는 사람들이, 기업하는 사람들이 들먹이는지를. 대통령이 ‘완장’의 주인공과 같은 소인배가 되고 싶지 않다면, 그냥 놔두시라. 역사교과서는 역사를 오랫동안 공부해 온 사람들의 논의에 맡겨둬야 한다. 학문분야와 그 오랜 성과를 수혈받는 학생들의 사고가 왜곡되지 않도록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구실이 아닌가.장진희/서울 송파구 문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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