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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05 20:23 수정 : 2008.10.05 20:23

왜냐면

전국 모든 학생 대상 치르겠다 발표
시험은 더 잦은 시험 부르는 악순환
교사·학부모 체험학습 떠나자 선언
통쾌한 저항에 기꺼이 동참

나는 지지한다. 일제고사 거부, 이 유쾌 통쾌한 저항을! 학부모들과 교사들이 일제고사를 거부하겠다고, 한술 더 떠 체험학습하러 함께 떠나자고 선언했다. 시험이 끝나는 즉시 휘발되고 말 지식을 점검받는 일제고사 대신에, 우리들은 몸으로 느끼고 새기는 교육을 찾아 떠나겠다고 콧노래를 부른다. 행여나 학생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누구나 시험지 버리고 줄레줄레 따라나서지 않을까. 시험날이 전국 학생들의 체험학습날이 되지 않을까.

이명박 정권이 교육 자율화의 이름으로 각종 지필시험을 부활시키고 있다. 경쟁만 부추기지 학생 발달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성적 공개도 노골화하고 있다. 고등학교의 모의고사 실시 규제도 없애고, 학교별 시험성적 공개를 ‘정보화’라 포장하고, 표집해서 치던 시험도 전국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 정권은 역사가 버린 일제고사를 관 속에서 다시 불러내고 있다. 매우 짧은 집권 시기 동안 이명박 정권은 교육을 시험의 광풍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부의 제도 하나가 현장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교육 현장을 어떻게 파손시킬지 하는 정말 심각한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시험이 천형과 같다. 시험 일정이 정해지면 학생들은 무조건 시험을 쳐야 하고, 시험 결과를 통지받고 성적으로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점지받는다. 그리고 반복된 시험으로, 학생들은 인류가 찬양해온 모든 인간의 뛰어난 능력, 호기심과 학습력에 대한 포기를 배우고, 시험 성적이 학습력이라 굳게 믿고 자신의 능력을 과잉 또는 축소 해석한다. 하지만 시험은 교육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주어지면 무조건 쳐야 하는 게 아니다. 또한 지필시험은 평가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시험이 학생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유일한 방식이 아니다. 주요섭이 말했듯이 시험은 “간편하지만 유해한” 도구다. 간편하다고 유해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사와 학생은 적절한 평가 시기와 방법을 결정할 수 있다. 이것이 교육 자율성이다. 그럼에도 어느새 우리 학교와 학생들에게 시험은 천형이다. 감히 바꿀 수 없는 것, 그저 받아들여야 할 괴로운 과업이다. 시험은 더 높은 점수를 위해 훈련이 필요하고, 그래서 시험은 더 잦은 시험을 부른다. 월말고사는 주말고사를 부르고, 주말고사는 일일고사를 부른다. 시험은 부지런하다. 어느새 학교에 시험은 가득 차고, 아이들의 발달을 살피고 평가 결과를 피드백해서 모든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교육은 없다. 잦은 시험으로 인한 과정의 괴로움, 시험 성적이 곧 아이들로 낙인이 찍히는 끔찍한 시선의 폭력은 문제삼지 않는다. 사교육 시장과 정부와 내 아이를 위하는 어른들이 공모한 폭력이 교육과 더 안락한 삶과 국가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횡행하고 있다.

우리 역사상 시험은 여러 번 거부되어 왔다. 성균관에서는 유생들이 잘못된 국정에 저항해서 시험을 거부하고 성균관을 떠난 사건이 있다. 일제 강점기 광주학생운동 때 학생들은 백지를 제출하는 백지동맹을 벌였다. 시험지는 책상 위에 그대로 놔두고서. 시험 거부의 오랜 역사가 있다. 학생들이 사회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수업과 시험 거부였고, 역사적으로 정당했다.

이번 일제고사 거부가 더욱 반가운 건, 교육적 이유로 시험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모든 학생들의 발달을 자극하고 발달을 경험하도록 돕는 것. 이 점에서 학생들의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비교육적 처사라면 정권에서 강요하는 시험이라도 거부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까닭이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단위 학교와 교실에서 충분하다. 굳이 전국에서 한날한시에 지필시험을 쳐서 성적을 내지 않아도 된다. 전국적 성적 매기기 다음에는 지역별·학교별 서열짓기의 정당화가 뒤따라올 뻔한 순서다. 그 속에서 개별 학생의 발달은 사라진다. 훗날 시험을 기록하는 역사가는 교육적 이유로 시험을 거부한 이 사건을 기록할 것이다.


이경숙 대구 수성구 황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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