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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05 20:26 수정 : 2008.10.05 20:26

왜냐면

서울의 우리네 앞마당에서 80, 90년 전 독일의 앞선 디자인 문화를 직접 감상한다는 것은 자못 흥미진진한 일이다. 특히 이 디자인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진한 자취를 남기며 지금의 우리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면 더 말해서 무엇하랴.

지난달 24일, 서울 사간동의 금호미술관에서는 ‘유토피아: 이상에서 현실로’라는 제목으로 독일의 바우하우스와 ‘프랑크푸르트 부엌’, 그리고 슈투트가르트 바이센호프 주거단지에 관한 전시회가 시작됐다.

근대건축운동의 선구자 발터 그로피우스가 1919년 창립한 바우하우스는 다양한 갈래의 조형예술을 공업생산과 융합함으로써 근대적 산업디자인의 길을 열었으며, 1926년 마르가레테 쉬테-리호츠키가 설계한 콤팩트한 부엌 유닛은 그 기능과 공간의 합리성으로 인해 근대화된 부엌의 전형적 모델이 되었다.

한편, 독일공작연맹에서 주관한 1927년의 바이센호프 주택전시회는 미스 반 데어 로에를 주축으로 한 유럽 여러 나라의 진보적 건축가들이 참가함으로써 근대건축운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한 점으로 수렴케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20세기 초 독일디자인 정수 전시

경복궁 옆의 이 자그마한 미술관은 그 단아한 품위에 맞게 각 주제의 전시품을 짜임새 있게 조직하여 진열하였다. 1층의 다이어그램화된 연대기표를 중심으로, 지하 1층에는 프랑크푸르트 부엌과 바이센호프 주택단지가, 지상 2, 3층에는 바우하우스 마이스터들의 주택 인테리어와 책상, 의자, 조명기구 등이 방문객을 맞는다.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디자인이기보다 일상 삶 가운데 곱씹어 봐야 할 주제로 전시테마를 정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디자인과 주거공간에 대한 관심의 깊이가 더해졌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20세기 초반의 전위적 예술가들이 만든 가구나 생활용품을 수집하여 우리의 목전에 가져다준 주최 쪽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욕심 부리지 않고 미술관의 규모에 걸맞게 적절한 양의 전시물을 적절한 방식으로 보여준 그 ‘적절함’도 높이 살 만하다. 이러한 중소규모의 박물관이 이 정도의 역량을 발휘하면 우리의 문화도 다양한 층위에서 더욱 풍성해지리라.


공간의 합리성 ‘프랑크푸르트 부엌’

하지만 미술관내의 전시 형식이 갖는 ‘적절함’에 비해 그 내용을 전달하려는 수고의 치밀성에 서는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이 전시에서는 세 개의 테마가 긴밀한 연결고리 없이 각각 파편화된 독립주제로서만 존재한다. 물론 1920년대 전후의 독일이라는 시공의 범위가 있고 진보적 주거공간 디자인이라는 커다란 얼개가 있지만, 이 전시가 주장하는 ‘유토피아’를 향한 근대주의자들의 궤적이 어떻게 서로 교차하는지 조금은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이러한 서구의 선례에 대한 비평적 수용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전시자의 입장이나 관람객들의 주요 반응이라면 20세기 초에 일찌감치 근대화와 디자인의 공업화에 성공한 독일의 문화에 경탄하는 정도로 갈음되는 듯하다. 여기에는 공업생산 시스템의 선봉에 선 바우하우스에 대한 오랜 비판의 목소리나, 주부의 가사 효율을 추구했던 프랑크푸르트 부엌이 오히려 그들의 해방을 저해한다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 그리고 바이센호프가 기폭제로 작용했던 국제주의 양식의 전파가 현대 건축가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다는 현실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결국 이 전시회의 결정적 단점이라면 전문 스칼러십과의 연계가 없었다는 사실일 게다. 이 정도 잔치가 마련되었으면 건축학계에서도 여럿의 식객들이 관심을 가졌을 만한데, 건축 동네의 주요 매체에는 아직 이 행사에 관한 알림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듯하다. 힘든 시기에 사설 미술관이 애써 마련한 밥상에 심심히 감사를 느끼면서도 마음 한편의 허기를 달랠 수 없는 게 솔직한 속내다.

김현섭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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