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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08 20:43 수정 : 2008.10.08 20:43

왜냐면

영국 주간지 ‘빅 이슈’ 노숙인 생계 위한 잡지
그들에게 판매권을 줘 자활 가능하게
한국판 빅 이슈 창간 준비하면서 확인한
우리사회 빈곤문제에 대한 빈곤 안타까워

“저 분이 만약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거예요. 그러나 지금 저 분은 다리가 불편한데도 꿋꿋하게 서서 ‘일’을 하고 있잖아요.”

런던의 코벤트 가든 역에서 주간지 <빅 이슈>를 산 젊은 여성의 말이다. 그녀는 시종 밝은 표정이었고, 옆에서 불편한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한 채 ‘빅 이슈! 빅 이슈!’를 외치고 있는 초로의 판매원(벤더) 역시 밝은 표정으로 ‘일’에 여념이 없었다. 판매원의 목에 걸린 아이디 카드에는 “워킹, 낫 베깅!”(구걸이 아니라 일하는 중이다!)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연초 영국의 주간지 <빅 이슈> 취재를 위해 런던에 다녀왔다. <빅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4년 전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강좌’에서 강의하면서부터였다. 특히 이듬해 인문학 과정을 졸업하고도 마땅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일용직을 전전하거나 다시 거리로 나앉는 졸업생들을 보면서 관심이 깊어졌다.

영국에서 홈리스들이 빅 이슈 판매에 나선 것은 1991년부터였다. <빅 이슈>는 홈리스의 생계와 자활을 돕기 위해 발행되는 잡지이며 홈리스에게만 잡지 판매권을 주는 방식으로 그들을 지원한다. 현재 영국의 주요 도시들은 물론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케냐, 남아공 등 28개국에서 발행돼 현지 홈리스들의 생계를 돕는 자활사업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런던에서 만난 <빅 이슈> 편집장 찰스 호지고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기간에만 20만파운드(4억원)를 벌었다”며 “점차 판매율이 신장되고 있으며 그만큼 판매원들의 수입도 늘어 기분이 좋다”며 즐거워했다.

지금 나는 ‘한국판 빅 이슈’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잡지들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는 마당에 ‘노숙인을 위한 잡지’를 창간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수익이 불투명한 사업에 투자하려는 사람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안타까운 건 그게 아니다. 빈곤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의 ‘빈곤’을 확인하는 일이다. 한국판 빅 이슈 창간을 위해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곤문제는 ‘나의 문제가 아닌 그들만의 문제’일 뿐이며,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운과 능력의 문제’로 인식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그게 어디 그런가. 빈곤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소외가 나은 결과이며, 자본주의의 다양한 모순들이 배태한 구조적 문제인데 말이다. 더욱 중요한 건 불황이 일상화된 오늘날에는 누구나 하루아침에 빈곤계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연재해나 교통사고가 예고 없이 일어나듯 가난 또한 예고 없이 나에게 닥칠 수 있다. 그래서다. 평소 빈곤문제를 남이 아닌 나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빈곤을 자신의 문제로 인식할 때 비로소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렇다고 빅 이슈 창간을 포기할 수는 없다. ‘노숙인 인문학 강좌’에 참여하고 있는 나는 지금도 도처에서 노숙인들의 고통과 절망을 접하고 있다. 해마다 거리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노숙인의 수가 수백명을 넘은지 오래다. 청년실업의 여파로 청년노숙인의 수가 급격히 늘고 있고, 심지어 대이은 부자 노숙인도 등장하고 있다.

반면 노숙인 관련 정부의 대책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쉼터 운영과 극히 일부에게 기초생활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그같은 일방적이고 단순한 지원만으로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노숙인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인문학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깨닫기도 했다. 기회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가족이 해체되고, 건강이 좋지 않으며 신용상태가 엉망인 그들을 받아주는 기업은 찾기 힘들다. 한국판 빅 이슈 창간을 모색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당당하게 거리에 서서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다.

현재 한국판 빅 이슈 창간은 난관에 부닥쳐 있다. 창간 자금 조달이 난망한 상태이며, 함께 할 사람을 구하는데도 애를 먹고 있다. 정부나 기업의 후원은 아직 엄두조차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최준영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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