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ABC도 모르는 초등 2년 딸이 받은방과후 원어민 영어교실 레벨 테스트
영어 회화문장 빈칸 답쓰기에 경악
표준교육과정상 영어 문자쓰기교육은 초등 5년 과정
선행학습 접근은 공교육 스스로 부정하는 꼴 며칠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로부터 가정통신문 한 통을 받았다. 방과후에 원어민 영어교실을 개설하니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신청 전 레벨 테스트를 받으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가 원했고 엄마의 협박(?)도 있고 해서 신청하는 데 동의를 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아이는 지금껏 영어학원에 다닌 적도 없고 물론 알파벳도 알지 못했다. 레벨 테스트를 받으러 갔다. 그날 퇴근하고 아이 엄마의 하소연을 들었다. 테스트를 받으러 갔더니 시험지에 뭔가 영어로 질문이 적혀 있고 답을 적으라는 형식이었다는 것이다. ABC도 모르는 우리 딸 … 얼마나 황당했을까. 아는 것만 적으면 된다고 말해주고 나왔다는데. 나는 웃음밖에 안 나왔다. 글자를 알아야 적지. 첫 시간을 참관한 아내가 내보이는 종이쪽지 한장. 영어로 된 회화문이었고 빈 칸에 적당한 단어를 넣는 것이었다. 순간 목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 수업을 포기해야겠다고 결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학교는 공교육의 장이다. 공교육은 단순 지식전달이 아닌 교육학적 고려 위에 한다. 교육학적 고려는 학자마다 교사마다 서로 다를 수 있기에 교육 당국은 이를 수렴해 하나의 교과교육 과정의 표준안을 도출한다. 이번 영어 원어민 교실은 수업 내용이 학교에서 실시하는 정규교과 과목에 해당하며, 그 대상이 1, 2학년임을 고려하면 선행학습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즉,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특기적성 교육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그럼 우선 현재 사용되는 7차 교육과정의 영어과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서는 문자 쓰기 교육은 초등 5학년부터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3학년의 경우는 듣기와 말하기만이 교육 내용에 포함된다.(7차 교육과정 개정안에서는 알파벳의 읽기까지 포함될 예정임) 문자 언어의 노출 자체가 4학년에 가서야 이뤄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초등 1, 2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선행 학습에서 단어 쓰기를 수행한다고 하는 것은 교육과정상의 지침에서 한참 벗어난 행태다. 그 다음 첫 번째 수업에서 제시한 문장 중에는 4학년 이상의 과정에서 학습하도록 한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 또한 교과교육 과정을 무시하는 처사다. 선행학습이라 하면 정식 교과과정이 시작되기 전 그 과정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활동을 의미한다.
만일 이 수업이 현실적으로 학원을 통해 일정 수준에 오른 특정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미 정해진 교육과정과는 무관하게 하는 영어교육에 해당한다면 이는 일반 사교육 시장의 학원과 다를 것이 없으며 학교 스스로 공교육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학교에서 수업이 이뤄지는 한, 초등 1, 2학년은 영어를 하나도 접해보지 못한 것으로 가정해야 한다. 이러한 가정이 현실적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아직까지는 이것이 현실이며 사회적 합의이며 교육적인 것이다. 또한 누군가는 수준별 학습 혹은 심화학습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도 학교에서 이뤄지는 한, 모두 교과과정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표준 교과과정을 뛰어넘어 수행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동의 인지 발달 능력에 따라 학습 내용을 정하고 적절한 교수 학습법을 사용하여 해당 과목의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곳이 학교이다. 이것이 감히 사교육이 따라올 수 없는 공교육의 힘이며 설 자리다. 김근율 수원 장안구 율전동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