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보전지역 19가지 개발사업 사전환경성 검토 면제주민 의견수렴 절차도 절반으로 줄여
대형 개발사업에 ‘날개’
한국의 습지와 철새들 존망의 기로에 10월24일 환경부 장관은 ‘환경영향평가 등에 관한 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 법안은 건설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대통령의 입맛에는 맞겠지만 지극히 반환경적이다. 기존 법에서 필요하다고 인정되었던 보전지역에서의 19가지 개발사업에 대한 사전 환경성 검토를 면제하는데다 주민 의견 수렴 절차도 절반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이 제도가 있어도 필지 분할을 통해 환경성 검토 절차를 빠져나가기 일쑤였던 대형 개발사업들은 날개를 달 것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형식적 치레에 그치던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건너뛰다시피 하여 개발을 둘러싼 갈등도 고조될 것이다. 그동안 천성산·새만금 등 숱한 개발 의제를 둘러싼 갈등을 겪으며 나름의 모양새를 갖춰가던 환경 관련 제도는 한숨에 10년 전으로 뒷걸음질치게 되는 셈이다. 지금 습지보호지역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한강 하류 재두루미 도래지’ 인근에서 벌어지고 있는 16만평의 대규모 종합휴양시설 개발은 행정기관과 기업들이 이 성기기만 한 현행법을 어떻게 편법적으로 피해 가며 환경을 파괴하는지 잘 보여준다. 15층 높이의 콘도 31동이 산봉우리 서너 개를 까뭉개고 들어설 뿐만 아니라, 하늘로 치솟으며 능선을 가리는 것도 모자라 대형 워터파크 등 놀이시설이 들어서는 이 사업은 ‘사전 환경성 검토’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 승인을 받았다. 이 시설이 들어서는 ‘통일동산지구’를 개발하던 1991년에 환경영향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별도의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 해당 행정기관의 해명이다. 궁색하다. 사전 환경성 검토 제도는 사업이 확정된 뒤에 이뤄지는 환경평가와는 달리 그 이름마따나 사전에 계획의 적정성과 입지의 타당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2000년 들어 시행된 제도다. 그러니 위 사업의 경우, 사전 환경성 검토를 거치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이 지역이 2006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될 정도로 그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터에 17년쯤 전에 환경영향 평가를 받았다고 하여 그것으로 대체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이 사업이 철새들의 잠자리·먹이터·쉼터·놀이터가 되어주던 공간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대규모 개발 계획인 터에 이를 무시하고 승인했다는 것은 무책임하거니와, 개발업자와의 부적절한 결탁이 의심되는 행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이 이렇게 척박함에도 습지보호지역,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등 그동안 헐거우나마 나름대로 보호를 받아오던 보물들을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개발의 포클레인 앞에 내모는 법으로 개악하는 이 정부는 과연 어떤 가치를 부여안고 미래를 기획하는 것인가. 지금 한강 하구에는 철새 수만 마리가 날아들고 있다. 큰기러기, 쇠기러기, 재두루미, 개리, 독수리, 황조롱이, 잿빛개구리매 등 멸종위기 혹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조류만도 32종이다. 그러나 이런 한강 하구의 생태적 풍요로움은 편법 개발과 헐거워지는 규제로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습지 및 철새를 보호하려고 머리를 맞대는 람사르총회의 주최국 한국, 외교적 수사로 치장한 덕담이 만발한 그 뒤편에서 한국의 습지와 철새들은 존망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현숙 파주환경운동연합 상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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