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수능·논술 몇점 더 받았냐는 평가보다고교 성적과 다양한 활동 최우선 고려
대학은 우수학생 어떻게 뽑을까가 아닌
어떻게 뛰어난 학생으로 키울까를 고심해야 수능시험이 끝났다. 짧게는 12년, 길게는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준비한 50여만명의 수험생이 시험을 치르던 날, 대한민국은 숨을 멈춘다. 특히 올해는 수리영역의 난이도가 높아 중하위권 학생들의 점수가 많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해 수리영역이 지나치게 쉽게 출제되어 변별력이 떨어졌다는 결과의 반영이다. 그 결과, 지난해의 경우 수리 가형의 1등급이 98점이었는데 올해는 80점 전후로 예상된다. 약 20점이 떨어진 것이다. 고등학교 현직 수학교사로서 묻고 싶다. 수능 문제를 어렵게 출제해야만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인가? 먼저 수능 문제를 어렵게 출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살펴보자. 올해처럼 수리영역 문제가 어렵게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학교교육에 만족하지 못하여 사교육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공교육만으론 어려운 수능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심리가 학부모를 자극하고, 그 결과 사교육 시장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여러 정책을 도입하고 각종 규제를 풀지만 사교육 시장만 키워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요컨대 수능 문제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우리 교육의 고질병인 사교육 비용만 키우게 될 것이다. 또한 누가 수능 문제가 어렵게 나오기를 기대하는가?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는 시험문제가 어렵게 나오는 것에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상위권 학생·학부모는 쉽게 나오는 것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최상위권 학생·학부모는 더 어렵게 나오기를 바랄 것이다. 왜 그럴까? 1, 2점의 수능 점수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현 입시제도하에서는 상위권으로 올라갈수록 확실한 점수 차이가 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등급 안에서도 점수에 따른 차등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그 결과가 1년 만에 부활한 표준점수 및 백분위다. 예를 들어 올해 수능 수리영역에서 98점을 받은 1등급 학생과 85점을 받은 1등급 학생이 같은 대학을 지원하고자 할 때 같은 점수를 받는다면 누구의 불만이 많을 것인지는 자명하지 않은가? 결국 수능 문제가 어렵게 나올수록 상위 3%의 학생을 둔 학부모의 기쁨은 두 배가 되겠지만, 나머지 97%의 학생과 학부모의 절망과 허탈한 마음은 누가 달래줘야 하는가? 수능시험은 쉽게 출제해야 한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변별력이 떨어져 대학 입학이 더 혼란스러울 것이라 한다. 이는 수능시험이 대학 입학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수능이 쉽게 출제되면 변별력이 떨어져 논술시험을 치르는 학교가 많아져 학생들의 부담만 가중된다고 한다. 학생들의 고등학교 성적보다는 교육과정 외적인 요인으로만 학생들을 선발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들이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정부당국은 사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며 그동안 지침으로 내린 많은 규제를 풀었다. 대학 입학에 관한 업무도 대학에 맡겼다. 지금 학교는 학원화되어 가고 있다.
대학은 수능 점수, 논술, 면접고사, 전공적성 시험 등 교육과정 외적인 것만으로 학생을 선발할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의 성적과 다양한 활동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더는 고등학교를 ‘재수생 양성소’로 전락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대학은 ‘우수한 학생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우수한 학생으로 만들 것인가?’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더는 수능시험 때문에 목숨 거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 수능시험에서 몇 점 더 받고 덜 받은 것으로 그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지 말자. 학생들의 성취도가 높게 나온다면 학력이 신장된 것이 아닌가? 우수한 학생을 더 뛰어난 학생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대학의 몫이다. “학생을 선발할 때 고등학교에서 이룬 성취도를 1단계 선발 기준 및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지원자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이수과목 가이드라인을 확립해야 하며, 지원서 검토의 첫 단계는 지원자의 고교 성적 평가를 포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미 코넬대 도리스 데이비스 입학처장의 입학업무 컨설팅 결과가 그 답의 첫걸음이기를 기대해 본다. 황보근석 인천 인제고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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