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푸틴의 언론 재갈물리기는‘반민주’의 명백한 신호였으나
부시 시절엔 비판 어려워
언론탄압, 한국은 어떤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대통령 시절인 2001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대단한 환대를 받았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부시의 고향 텍사스를 방문해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접을 받았다. 직접 트럭을 몰고 드라이브도 즐기며 아주 친밀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부시는 푸틴의 “가슴과 영혼”을 보았다며 정상회담의 성공을 자축한다. 물론 푸틴을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치켜세우던 부시는 러시아에서 실제로 그가 어떤 대통령이었는지 그리고 그 임기가 끝난 뒤에는 총리로서 권력을 이어가는, 민주주의의 “가슴과 영혼”과는 거리가 있는 지도자였는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아니 몰랐을 것이 확실하다. 대통령이 모르니 어린 학생들이 알 수가 있나. 나는 미국에서 정치학을 가르친다. 민주주의의 정의에 대하여 미국 학생들과 토론을 하는 것은 늘 새롭다. 많은 학생들은 스스로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선 그런 고정관념을 깨, 당연하게 여기는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보람되다. 내가 좋아하던 토론의 한 예가 푸틴의 러시아였다. 푸틴은 2000년 선거에서 과반수를 얻은 인기 있는 대통령이었다. 물론 내전이라는 호재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푸틴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일조했음은 말할 것도 없겠다. 이후 푸틴은 정치적 반대를 하나하나 잠재웠다. 2003년 가스 재벌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회장의 체포는 그 신호탄이었다. 메시지는 아주 분명했다. 자신을 반대하는 그 누구도, 아무리 부유하고 세력이 굳건하더라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정치제도도 그의 입맛에 맞게 고치고, 체첸 지역에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폭압적인 군사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푸틴이 무엇보다 공들인 것은 아무래도 언론에 자갈을 물리는 것이었다. 모스크바의 노력은 치밀하고 총체적이었다. 그의 치부를 건드리던 유명 티브이채널
두 번의 대통령선거, 두 번의 의회선거를 합법적으로 치른 푸틴. 그가 과연 민주주의의 수호자였을까? 당연히 답은 너무나 뻔한 ‘아니요’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가차없이 처단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다 못해 독재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물음에 답을 하기가 2009년엔 수월하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내 학생들은, 특히나 부시를 지지하는 학생들은 자기 눈앞에 보이는 푸틴의 반민주적인 행태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도 치르고, 자신이 지지하는 부시가 친구처럼 대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어떤 학생들은 내가 조목조목 따지면 거의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갈수록 그런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의 수는 적어져 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민주주의 지도자라고 하기엔 너무 뻔하게 그의 독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이명박 대통령을 푸틴에 비유한다면, 화를 내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뭐라 그럴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난 시간이 갈수록 설사 누가 그런 비유를 한다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게 되길 진심으로 빈다. 왜냐하면 그 반대는 상상하기도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사람이 방송사를 억지로 장악하고, 대통령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던 뉴스 앵커가 시청자들과 회사 동료의 지지에도 뉴스에서 중도하차하고, 대통령의 정책에 비판적이던 진행자가 프로그램의 눈부신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무 이유 없이 방송을 그만둘 뻔했다. 난 이런 이야기가 러시아만의 것이길 바랐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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