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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14 21:24 수정 : 2009.06.14 21:24

전기 철선 5㎞ 놓을 수 있도록
자연공원법 개정 추진
모든 산 케이블카 설치 가능하게 돼
자연이 죽은 곳에 사람도 살 수 없다

내가 다달이 가는 산길 모임인 ‘역사와 산’에서 지난 주말 지리산에 들었다. 산을 아끼는 사람들은 산에 오른다고 하지 않고 산에 ‘든다’는 말을 쓴다. 산꼭대기에 올라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는 즐거움에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산이 주는 아름다움과 포근함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닌다.

산은 산에 드는 모든 목숨붙이들을 품어 준다. 그래서 먹을거리가 없는 사람,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 마음을 맑고 밝게 하려는 사람들이 산에 들어 목숨을 이어갔다. 근데 언제부턴가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산이 몸살을 앓고 있다. 난 지지난해 1월, 지리산에 들었다가 따뜻한 날씨에 눈이 녹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어떤 이들은 날이 춥지 않아서 좋다고도 했지만 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이고 칼바람 부는 지리산 천왕봉이 그리웠다.

이명박 정부는 자연공원법을 고쳐서 지리산·설악산·북한산에 케이블카를 만들려 한다. 땅에서 산꼭대기까지 5킬로미터 길이로 전기 철선을 놓을 수 있도록 법을 고치려 한다. 이 법이 만들어지면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산들에 케이블카를 놓을 수 있다.

케이블카를 만들면 산에 들어갈 힘이 없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손쉽게 산꼭대기에 가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산에 사는 수많은 목숨붙이들은 어찌 되는가. 케이블카가 만들어지면서 일으키는 시끄러운 소리에 온갖 새들과 동물들이 제 삶 터를 잃을 것이다. 케이블카를 만들고 나서는 케이블카 아래서 자라는 나무와 꽃들은 잘리고 목숨을 잃게 된다. 케이블카를 만들면 그 동네 사람들은 땅값이 오르고 사람들이 많이 와서 돈을 벌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연은 지금 살고 있는 우리에게만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뒤에 살 사람들에게도 소중하다. 이렇게 자꾸 자연을 더럽히면 지리산에서 1월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쏟아지는 큰비를 맞을지도 모른다.

제발 이제 조금 편하게 살겠다고 자연을 더럽히는 일을 그만두라. 지금껏 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은 늘 경제 성장을 외쳤다. 이명박 정권도 오로지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믿음으로 온 나라를 부수고 있다. 몇 달 앞서 용산에서는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던 사람들을 억지로 쫓아내면서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런 일이 한 번으로 그치겠는가. 대운하를 만들면 또 얼마나 많은 목숨붙이들이 목숨을 잃겠는가. 그런 일에 반대하며 나서는 사람들을 용역 깡패, 전투경찰, 군대의 힘으로 막으며 가두고 죽인다.

난 광장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을 보며 희망을 보았다. 이젠 사람들이 이명박이 잘살게 해준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아니 조금 못살아도 조금 불편하게 살아도 자연을 더럽히지 않고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날을 맞으려 나서는 사람들을 보았다.


지리산에 든 ‘역사와 산’ 사람들 30여명의 등가방에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만들지 마라’라는 글이 쓰인 헝겊을 붙였다. 산을 좋아해서 땀을 흘리며 한 발 한 발 걷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으리라. 그런 힘들이 모여 살맛 나는 마을을 만들고 광장에서 촛불로 되살아난다.

산은 있는 그대로 두면 모든 목숨붙이들을 안아 주지만 사람들이 조금 편하게 살려고 자꾸 더럽히다 보면 스스로 살려고 몸살을 앓다가 사람들을 죽이는 무기로 바뀐다. 그땐 뉘우쳐도 늦는다. 자연이 죽은 곳에 사람도 살 수 없다. 케이블카를 만들지 마라.

은종복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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