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1.30 20:43
수정 : 2010.11.30 20:43
운동경기만큼 세금과 열정을
투자해서 과학도를 길러내고,
학문·예술진흥·전인교육 힘쓰면
진짜 ‘위상’과 ‘격’이 올라가리라
근세 올림픽경기는 소위 아마추어 정신으로 재출발하여 말 그대로 세계적인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아마추어 정신은 점차 훼손되고, 자본주의 정신이 강하게 침투되면서 사람들은 운동을 돈벌이와 오락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올림픽경기 같은 국제경기에서 승자가 되면 국가로부터 보상과 연금을 받고, 젊은이들에게는 국방의 의무까지 면제해주는 혜택을 주고 있다. 어린 세대들은 체육영웅의 꿈에 부풀어 있고, 체육영웅이 되려면 학교 수업을 무시하는 것쯤은 당연히 여기는 풍조가 되었다. 학문에 매달리는 열정은 체육의 부산물쯤으로 바라보는 경향으로 급변했다.
요즈음 아시안게임의 강풍이 한창 몰아치고 있다. 전국이 운동천하가 되었고, 체육학교로 변한 느낌이다. 물론 어떤 운동선수라도 절정기를 넘어서면 퇴조할 수밖에 없지만 사람들은 오직 승자, 곧 1등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운동선수가 영원한 승자로 남기를 바란다. 성적이 부진한 선수는 퇴물이요, 상품가치를 잃었기 때문에 동정의 여지가 없다. 한때 유명했던 한 축구선수는 경기장에서 한참 동생뻘인 아이들에게 욕설과 야유, 멸시받는 장면이 대중매체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오늘날 국제경기를 주관하는 기관들의 위세와 권한은 도를 넘었다. 그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국빈 대접을 받는다. 이제 운동경기는 지구인의 왕좌에 앉아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운동경기에 이겨 속칭 ‘세리머니’라 부르는 행동으로 자신을 뽐내고 떠들어야만 승자의 미덕인가? 승자의 파트너인 패자의 처지로 돌아가 겸허한 태도로 패자를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인간미를 보여준다면 진정한 올림픽정신의 구현이 아니겠는가?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의 2위 자리에 올랐다 해서 한국의 국력이 그만큼 강해졌으며, 소위 ‘국격’이 높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의 혈세로 경기에 승리했다고 해서, 우리 가난한 사람들에게 쌀 한톨이라도 되돌아오는 일은 아직까지는 없다.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이 우리와 순위가 바뀌었다지만, 그들은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여전히 세계가 인정하는 강대국이다. 일본이 경기에 뒤졌다고 해서 국격도 함께 추락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난하고 특별히 재주도 없는 젊은이들은 군복무를 꼬박꼬박 마치지만, 운동경기로 국격을 높였다는 선수들은 국가가 나서서 병역의무를 면제해준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국방의무’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생니를 뽑고 팔목 수술을 해서라도 국방의무를 기피하려는 풍토는 이런 특혜와 결코 무관한 것일까?
전 국민이 운동경기로 취해 있는 이런 때, 나 같은 사람의 이런 비판은 예의 그 축구선수보다도 더 혹독한 야유와 멸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스포츠 영웅 시대, 스포츠 상품 시대, 운동경기를 위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퍼붓는 시대, 스포츠 정치화 시대의 그늘을 냉정하게 생각하면 좀더 합리적인 대안이 나올 듯싶다. 국가가 운동경기만큼 세금과 열정을 투자해서 과학도를 길러내고, 학문과 예술진흥, 그리고 전인교육에 힘쓴다면 ‘위상’과 ‘격’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실망스럽지 않은 나라를 보게 될 것을 확신한다.
안종철 전남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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