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평화’라는 가치를
주도적으로 설정하고 여기에
한반도 관련국을 화합시키는… 6·25 전쟁 이래 최악의 사태로 기록된 북한의 이번 연평도 포격으로 인해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였다. 연일 남북 정부에서 흘러나오는 ‘전쟁’, ‘응징’의 단어만으로도 땅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체감할 수 있다. 남북은 서로에 대한 ‘포기’를 선택할 것인가. 북한이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 데에는 다양한 해석들이 오가지만 그중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이 ‘초조함’이다. 북한은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체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미국의 ‘선 비핵화, 후 제재해제’ 요구를 쉽게 따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핵’은 북한 체제유지와 협상의 최후 보루였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북한의 양자회담을 통한 ‘선 대화, 후 비핵화’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을 요구하는 공화당의 존재가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전략적 인내’에 몸이 달아오른 북한이 택한 카드는 ‘선 비핵화’가 아닌 ‘핵시설 공개’를 통한 위협과 과시였다. ‘이래도 협상을 안 할 것이냐’라는 메시지에도 미국을 주축으로 한 국제사회가 움직이지 않자 북한은 한반도 평화위협이라는 최악의 외교적 카드를 꺼내 든 셈이다. 사실상 미국과 궤를 같이한 한국형 ‘전략적 인내’, 비핵개방 3000 정책은 ‘민간인 2명 사망’이라는 결과만으로도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실패에는 ‘중국’을 간과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남북 갈등의 저변에는 동아시아의 미-중 패권 경쟁의 문제가 녹아 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은 북한을 옹호한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북한의 경제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벌어진 동해 한-미 연합훈련 당시, 중국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북한과 중국의 ‘혈맹관계’는 ‘한반도의 평화’를 한낱 외교적 수단으로 전락시키고도 당당한 북한식 후안무치의 원동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입장에서는 ‘전략적 인내’의 연장선에 있는 ‘조건부 응징론’을 고수해서는 문제를 풀어나가기 어렵다. 어떻게든 현실적으로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외교적 가닥을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미국식 ‘비핵화’ 의제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평화’를 한국의 핵심 의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매번 당하기만 한다’는 일부 보수층의 불만에 부응, 중국을 압박하고 북한의 사과를 받아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중국은 천안함 사건 이후 있었던 동해 한-미 연합훈련 때와는 달리 이번 서해 훈련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민간인 2명이 사망한 연평도 사태는 어떠한 식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만큼 중국도 선뜻 북한을 옹호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이다. 이를 지렛대 삼아, 북한이 다시는 한반도의 평화를 외교적 수단으로 삼지 못하게끔 하는 중국의 책임있는 역할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국면의 전환을 꾀하고, 나아가서는 남북 분쟁지역인 서해북방한계선(NLL)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로 개선하기 위한 논의도 주도해야 한다.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6자회담은 남북과 관계국들이 참여하는 가장 효과적인 장이다. 그동안 한국은 북한의 도발, 도발 후 전제조건을 동반한 화해 제의에 말 그대로 당하기만 했다. 이번 위기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평화’라는 가치를 설정하고 여기에 한반도 관련국들을 화합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정부가 신경써야 할 점은 전쟁불사론자들의 지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정치적 불안’이 아니다. 전쟁을 걱정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불안이다. 박성완 서울 종로구 구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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