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의 김해 여교사를
낳을지도 모를 일이다
근평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지난 6일 경남 김해의 초등학교 여교사가 교실 창틀에 목을 매 숨진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 결과 교감 승진을 앞두고 교장과 근무평정과 관련해 면담을 한 뒤 승진을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자 이를 비관해 유서를 남기고 스카프로 목을 맨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에서 발견된 고인의 유서에는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글과 함께 근무 평점이 낮게 나온 데에 대한 섭섭함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2월은 초·중등 교사들의 승진 대상자 명부 작성을 위한 근무평정(근평)을 하는 시기다. 매년 이때가 되면 많은 교사들이 근무평정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교사가 교감으로 승진하려면 두 가지 트랙이 있다. 하나는 전문직 시험을 통해 장학사나 연구사를 거쳐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는 명수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다른 하나는 점수를 차곡차곡 쌓아서 승진 대상자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승진에 필요한 점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소수점 셋째자리까지 점수 다툼을 벌인다. 점수는 경력, 연구점수, 연수 실적, 근무평정 등 4개 항목의 200점과 가산점을 합산하여 산정한다. 그런데 경력과 연구점수는 대부분 만점을 획득한다. 연수 실적에서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가산점의 경우 도서 벽지나 농어촌 학교 근무에 따른 가산점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이 또한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승진 임용에 절대적인 기준은 근무평정(100점)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근평 1등을 받지 못하면 교감 승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제는 근평의 객관성과 공정성이다. 외형적으로는 교장, 교감, 다면평가로 이루어지지만, 실제는 학교장의 판단에 100%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근평이 교장 한 사람의 마음대로 매겨지는 것이다. 교장의 절대적인 권한이 교사의 생살여탈권을 쥔 셈이다. 그러다 보니 근평을 둘러싼 부작용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전교조가 올해 초 교육비리 고발센터를 운영하면서 익명으로 제보받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교장의 근거리 출장이나 식사를 위한 외출 때 개인 기사 노릇을 하는 경우, 국외 연수 때 공항으로 배웅이나 마중을 가는 일, 학교장의 술값을 대납하는 경우, 명절이나 12월에 현금 상납, 일명 고스톱판 돈 잃어주기, 룸살롱 술 접대 등 비리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여교장들의 경우 골프채나 명품 가방, 귀금속을 선물로 제공하는 사례도 있다. 물론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 2월에 충성맹세를 한다. 이 충성맹세는 주로 룸살롱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충성맹세를 한 교사는 오로지 1등의 근평을 받기 위해 일한다. 이 교사는 교장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학교운영을 좌지우지한다. 학교 구성원 간의 소통을 기대할 수 없고 민주적인 학교문화가 불가능한 근본적인 이유다. 교사나 아이들을 위한 배려는 없다. 오직 교장의 하명만 금과옥조로 떠받들며 학사운영에 깊이 개입한다. 그래서 승진하고, 승진하면 교사들에게 자신이 했던 것처럼 할 것을 요구한다.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교육당국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근평제도와 승진제도를 개선하지 않는 것은 현 정권이 교장의 기득권 보호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수적인 교원단체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며, 근평과 연계한 승진제도를 통해 학교장의 교사 통제를 효율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참여정부 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도입된 것이 교장공모제다. 특히 교직 경력 20년 이상이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는 내부형 교장 공모제가 신선한 대안으로 부각되었다. 조현초, 보평초, 덕양중, 홍동중 등 공교육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학교의 공통점은 근평과 관계없이 공모를 통해 평교사를 교장으로 임용했다는 점이다. 또한 교육과학기술부가 연구 의뢰한 ‘교장공모제 학교의 효과 분석’(연구책임자 나민주 충북대 교수)에 따르면, 청렴도에서 내부형 공모제 학교는 86.2점(100점 척도)인 반면 임명제인 일반 학교는 78.6점이었다. 교과부는 이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검증된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교과부의 태도는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이명박 정부는 이 제도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평교사의 교장 진출을 사실상 봉쇄했고, 근평을 위한 비교육적 경쟁은 제2, 제3의 김해 여교사를 낳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리의 온상인 근평제도를 과감히 폐지하고 내부형 교장 공모제를 확대하는 것만이 교육비리를 없애는 지름길이다. 조성범 전교조 편집실장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