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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10 20:41 수정 : 2010.12.10 20:41

한국사회 기부문화의 신뢰도와
투명성을 높일 기회로 삼자
패자 부활전이 없는 사회는
불안하고 절망적이지 않은가

국내 최대 모금기관으로 12년 동안 2조원이 넘는 성금을 모아 어려운 이웃에게 지원해온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비리 사건에 엄청난 분노가 이어졌다. 기부는 철저하게 자발성에 기초하기 때문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다. 이 사건으로 한국에서 이제 막 피어오른 기부문화의 후퇴와 이에 따른 한국 복지체계의 일부가 무너질지 우려된다.

나는 개인적인 사회공헌활동 차원에서 지난 수년간 공동모금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했다. 일반 국민보다도 공동모금회 실체를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동모금회 직원 중에는 중견기업에 근무할 때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고, 우수한 능력을 지닌 제자도 있다. 내가 겪은 구성원들은 사회복지 분야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었다. 배분 정책을 자문하는 사회복지 관련 학과 교수와 복지 전문가들을 보니 모금액을 가장 적합하게 배분하기 위해 희생적으로 시간을 쓰는 것을 보았다.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서 이 사건이 비난으로만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바로 공동체적 질서 및 사회적 신뢰자본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트러스트>의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을 가족중심적인 저신뢰로 규정하고, 이들 나라는 가족 테두리를 넘어선 대규모 조직을 건설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기부문화는 시민사회에서 자발적으로 발전하고 급격히 성장했다. 기부가 민간으로 이양되어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출범한 첫해 213억원을 모금했는데, 이젠 3318억원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발전은 전세계 모금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일 것이다. 가족과 혈연 중심의 사회에서 기부금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라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기부에 있어서는 자부심을 느낄 자격이 있으며, 기부문화가 고신뢰 사회로 가는 사회적 자산이 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키워온 사회적 자산을 그대로 폐기할 순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한 사회의 불신이 팽배하게 되면,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부담할 필요가 없는 일종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저신뢰 사회의 특징이다.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해진 것이다.

미국 공동모금회인 ‘유나이티드 웨이’도 회장의 부정비리로 한때 크게 위축되고 흔들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고신뢰 사회다. 미국 국민들은 기부라는 것이 공동체 발전에 꼭 필요한 일이기에 일부의 잘못으로 전체를 버리지 않았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지금 유나이티드 웨이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신뢰받는 모금기관으로 거듭났다.

당장은 분노하고 마음이 불편하겠지만 그동안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우리 사회를 위해 기여해온 성과들에 대해 인정하고 나눔의 손길을 계속 이어야 할 것이다. 패자 부활전이 없는 사회는 불안하고 절망적이다. 한번 잘못한 것을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사회는 정체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문제는 한국 사회 기부문화의 신뢰도와 투명성을 높일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도 투명성과 자정능력을 높이는 여러 가지 쇄신안을 내놓았다. 시민감시위원회, 사이버 신문고, 기부자 온라인 피드백 서비스 등은 전세계 어느 모금기관에서도 실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쇄신안이 우리나라 다른 모금기관의 투명성 제고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먼 훗날 이번 사건을 한국 사회의 기부 투명성을 높인 계기로 기억하고, 기부문화를 한층 높이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배신에 대한 분노를 차원이 높은 격려로 승화시켜, 한국 사회가 공동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고신뢰 사회임을 증명했으면 좋겠다.


신호창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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