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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22 10:17 수정 : 2010.12.22 10:17

자본주의를 역사의 종결 체제로 선언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다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내 자유이고 사노련의 자유이다

12월3일. 검찰이 오세철 교수를 비롯한 ‘사회주의 노동자 연대’(사노련) 간부들에게 징역 5~7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했다. 언론은 크게 다루지 않았다. 사노련에 관한 것 모두. 그들은 다만 “사노련 간부들에 대한 구형이 내려졌고 그것에 대한 사상 논란이 있었다”고 짤막하게 언급했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사노련에 대한 보수 언론의 마녀사냥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은 담담하게 말한다. <조선일보>의 사설은 “사노련과 같은 망상에 빠진 집단은 친북은 아니라 해도 파괴적인 활동을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일단은 사노련이 친북 단체가 아님을 인정한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보수세력은 사노련의 이름 자체만으로 궤멸시킬 당위성을 입증했다고 믿지 않았나 싶다. 참으로 뻔뻔한 처사이다. 촛불시위는 시민들의 광기로 몰아붙일 필요가 있지만, 사회주의는 그 자체만으로 ‘죄’가 되는 것이다. 이미 ‘사회주의’에 온갖 악랄함을 함축해 둔 그들의 사고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사상의 마비가 올 지경이다.

황망함을 떨쳐내고 사태를 분석해보자. 검찰은 구형 이유를 용산사태와 쌍용차 파업에 개입하여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고 밝혔다. 좀더 나아가면 촛불시위 역시 맞물릴 것이다. 그러나 과연 사노련은 불온세력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척도는 무엇인가. 사노련의 주장은 간단하다. 노동자의 해방. 이게 전부다. 그들은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비정규직 철폐, 노동시간 단축, 토지의 국유화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딱딱한 사고관을 깨기 힘들다면 토머스 모어를 생각해보자. 그의 저작 <유토피아>에는 사노련과 일맥상통하는 발상이 많이 나온다. 토지의 공유는 물론이고 의원의 직접 선출, 평등한 노동과 쾌적한 노동환경. 이런 모어의 발상은 이후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이미 그전에 루소와 같은 계몽주의자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우리가 모어나 루소를 반자유적 인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토피아>는 청소년 권장도서가 아닌가!


따라서 사노련의 진짜 ‘죄’는 자유민주주의를 뒤흔든 것이 아니라 지배층의 폐부를 찌르고 자유를 역설했기 때문이다. 역사가 변증해주지 않는가. 진실에 좀더 근접해보자. 지배층이 말하는 ‘자유’와 우리의 ‘자유’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의 상상할 수 있는 자유, 권리는 탈이데올로기와 함께 녹아버리지 않았다. 자본주의 보수세력이 자유주의를 독점하고, 자본주의를 역사의 종결 체제로 선언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다. 그러나 그것을 비판하고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나의 자유이고 사노련의 자유이고 우리의 자유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어째서 ‘사회주의’의 흔적으로 말살하려 하는가. 그것이야말로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말한 사상 통제이다. ‘자유’와 ‘자유주의’가 프로파간다로 인해 그 의미가 퇴색된다면, 우리는 지제크의 말처럼 자유민주주의를 버려야 한다.

류희철 경기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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