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보수는 집안 형편을 핑계로
아이에게 점심도 주지 않으며
사치를 일삼는 못된 계부일 뿐
유호윤 서울 구로구 개봉3동
어린 시절, 부모님은 공부 도중 놀러 나가려는 나에게 “지금 놀면 커서 후회한다”며 혼을 내셨다. 노는 건 어른이 돼서도 늦지 않으니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등 연일 복지 논란이 거세다. 이에 대해 보수 언론은 “지금 복지를 늘리면 국가가 망할 수도 있다”고 경계한다. 지금은 경제 성장과 재정 건전성 확보가 중요하며 복지는 선진국이 된 뒤에 해도 늦지 않는다고 국민들을 타이른다.
보수 진영의 주장은 어릴 적 들었던 부모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눈앞의 작은 유혹 때문에 더 큰 것을 잃게 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 말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보수를 ‘엄격한 아버지’ 모델로 지칭했듯 보수 진영의 주장은 교훈적 설득력을 갖는다. 이런 훈계에도 무상복지를 주장하는 이는 집안 사정 모르는 철없는 어린아이가 된다.
보수 주장이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한민국은 재정의 약 10%가 국방비로 들어가는 분단국가이다. 또 복지예산이 부족하다 말하지만, 2000~2007년 사이 복지 지출의 증가율은 연평균 7.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증가율(0.3%)의 26배에 이른다. 재정위기에 빠진 포르투갈(3%)·그리스(1.8%)·이탈리아(1.1%)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보면 2000~2007년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에 비해 26배에 달하는 복지 지출 증가율을 기록했는데도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에서 복지 지출이 차지한 비중은 9.2%(잠정 추계)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오이시디 평균인 19.3%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지디피의 약 2.6%인 국방비를 고려해도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무엇보다 보수 진영의 ‘훈계’의 바탕에는 복지가 성장을 저해한다는 주장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다. 하지만 대표적 복지 강국인 스웨덴은 2000년대 연 4.47%의 성장을 기록했고 이는 미국의 4.17%보다 높은 수치이다. 복지가 성장의 반대급부라는 식의 주장은 근거 없는 낭설일 뿐이다. 좋은 복지정책은 사회적 안정을 가져오고 경제 성장의 동력원이 된다.
부모님의 말씀이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모든 인내의 결실이 온전히 내 것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 진영의 주장을 따라왔던 오늘까지 국가 성장을 위한 인내의 과실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60~80년대 성장주의 속 노동자들은 낮음 임금과 열악한 처우에도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했다. 이들의 인내 속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한국의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오이시디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국민의 인내와 희생만을 강요하는 보수는 ‘엄격한 아버지’가 아닌 ‘나쁜 계부’일뿐이다. 집안 형편을 핑계로 아이에게 점심 급식비도 주지 않으면서 자신은 몰래 사치를 일삼는 못된 계부 말이다. 이제는 성장이 아닌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논할 때이다. 성장은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우리 모두의 목표는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이 되어야 한다. 허위로 포장된 도덕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따뜻한 부모의 마음으로 복지 문제를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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