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2.08 19:14 수정 : 2011.02.08 19:15

양성준 서울 서초구 서초3동

방 천장, 거울, 지하철 맞은편 사람, 휴대폰, 보도블록, 엘리베이터 문, 컴퓨터 모니터. 만약 하루 동안 내 이마에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면 찍힐 영상이다. 나조차 두번 보기 힘든 단조로운 작품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매일 내 눈으로 바라본 것들이 정녕 이렇게 갑갑하단 말인가.

하루 동안 시야가 닿는 곳을 기록하며 가장 아쉬웠던 것은 시야의 물리적인 거리였다. 온종일 코앞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새삼스럽게 놀랄 일도 아니다. 며칠 전 우연히 먼 산을 바라봤을 때 밀려왔던 현기증이 의아해 기록을 해보기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시야를 가로막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항상 어딘가에 갇힌 형색이었다.

작은 방, 복도, 자동차, 지하철, 엘리베이터, 신촌의 건물들까지. 더군다나 요즘은 클릭 몇 번으로 원하는 것을 바로 얼굴에 들이밀 수 있다 보니, 온 세상이 내 코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꼴이다. 이러니 어디 눈을 돌려 멀리 볼 수 있을까. 그나마 멀리 본 것이라고는, 간혹 버스 차창으로 보이던 풍경, 바쁘게 걷던 중 힐끔 본 길 주변이 전부였다.

구제역 파동이 이제 세 달째로 접어들었다. 살처분된 가축들이 무려 300만마리 가까이란다. 유례없는 구제역 사태의 원인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이 나왔다. 그중 특히 눈길을 잡아끈 것은 공장식으로 운영되는 축사에 관한 것이었다. 가축들이 밀집되어 있는 축사와 대규모 도살장은 균이 창궐하기 적합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분석의 글 밑에는 꼭 축사의 사진이 한두 장씩 딸려 있었다. 몸에 겨우 맞는 울타리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돼지와 소들의 사진이 강렬했다.

그들은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 코앞의 울타리만 보고 있었다. 언젠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사람들로 둘러싸인 불판 위로 올라가는 그날까지, 커다란 눈으로 울타리 속 인생을 멀뚱멀뚱 기록하고 있었다.

멀리 본다는 것은 세상의 확장을 의미한다. 눈에 비친 것은 곧 사유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컴퓨터 모니터와 지하철 맞은편만 열심히 쳐다보며, 참 많은 사유의 조각들을 놓치고 살아왔을 게다. 어디를 가든 코앞만 바라보는 우리가 저 울타리 속 생명들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비약일까.

그렇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현대인의 기본 소양이 되었다. 문명의 이기를 단박에 벗어버릴 수 없듯이, 저 생명들을 울타리에서 바로 꺼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명도 구하지 못하고, 축산업자들에게도 힘이 못 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자괴감만 커지고 있는 요즘이다. 그사이 불쌍한 생명들은 계속 땅에 묻히고, 막막한 주인들은 울고, 축산업 이주노동자는 갈 곳이 없고, 나까지 울타리에 갇혀 조심스럽게 월담을 꿈꾼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