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11 20:30
수정 : 2011.03.11 20:33
원일형 ㈜겨레사랑 사업이사
북한과의 교역과 투자를 금지시킨 2010년의 이른바 5·24조처는 남북경협기업에는 사형선고였다. 보따리장사에 가까운 농수산물 교역으로 혹은 북한의 값싼 인건비만이 경쟁력이었던 위탁가공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약 1000개의 교역 및 위탁업체와 그 종사자는 하루아침에 삶의 근거지를 몰수당했다. 투자유치에 기업의 명운을 걸었던 많은 경협기업 역시 졸지에 손발이 묶이게 됐다.
이처럼 남북 당국의 정책 결정과 같은 외부 상황 때문에 경협사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될 때를 대비하여 정부는 2004년부터 남북경협보험 제도를 운용해왔다. 그리고 이에 따라 경협기업은 어려운 살림에서도 한푼 두푼 보험금을 적립해 왔다.
경협보험에는 ‘남북관계 변화에 따른 남한 당국의 조치 등 불가항력적 사유로 인한 투자사업의 불능 또는 3월 이상의 사업정지’ 상황이면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면 경협기업한테는 기업의 귀책사유 없이, 오로지 남측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의해 취해진 5·24조처가 그 자체로 ‘불가항력적’인 상황일 수밖에 없다. 이 자체가 분명한 보험지급 사유에 해당된다.
그런데 경협업체들이 통일부와 실무기관인 수출입은행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한 결과, 5·24조처 그 자체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 5·24조처가 구체적으로 해당 경협기업이 투자를 위해 하려던 ‘어떤 행위’를 금지 혹은 차단했는가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억지에 불과하다. 정부는 5·24조처로 개성공단을 포함한 모든 북한지역에 대해 신규 투자는 물론 진행하던 사업의 투자 확대도 금지했다. 투자를 못하게 해놓고 어떻게 못하게 했는지를 업체보고 입증하라니 소가 웃을 일이다. 당연히 지급받아야 할 때조차 받을 수 없는 경협보험제도라면 차라리 없애는 것이 그나마 경협기업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결정해야 한다. 사업의 안정성 제고로 남북경협 활성화를 도모하려 했던 경협보험의 제정 취지로 돌아가 보험금을 지급하든지 아니면 이미 존폐의 임계점마저 넘긴 경협기업한테 백골징포(白骨徵布)하는 경협보험제도를 폐지하든지. 그러지 않으면 경협보험제도는 국민을 기만하는 제도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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