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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18 20:13 수정 : 2011.03.18 20:13

[왜냐면]
거리에 버려진 것들을 주워모아
자원화를 이뤄온 고물상들에게
폐가전 취급을 못하도록 한단다
고물상이 환경파괴의 주범인가

고물상이라는 이름에는 피폐해진 농촌, 외환위기로 인한 대량 실직 등 국가가 감당하지 못한 복지의 중층적 모순들이 오롯하게 투영되어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의 도시 빈민과 도시로 몰린 농촌 실업자들이 넝마주이를 시발로 우리나라 재활용 산업의 문을 열었다. 그 안정화된 모습이 고물상이라 할 수 있다.

그 뒤 느닷없이 터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로 인한 대량실직 사태를 맞으며 고물상과 그 주변부에 포진한 유모차 할머니, 리어카 할아버지, 1t 트럭 행상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부강한 철강 산업의 이면에는 리어카를 끌고 골목골목을 누비던 우리의 선배 세대 고물상들의 피땀이 있었다.

고물상의 역사는 버려지는 것들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역사였다. 버려진다는 것은 가치 없다는 것인데 쓰다 귀찮고 가치 없으면 아무 데나 버려지는 것들로 넝마주이가 그랬고 폐가전 제품들이 그랬다. 생산자들은 알맹이만 쏙 빼먹고 껍데기는 안중에도 없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분들이 버려지는 것들을 모아 가치를 창출하고 산업의 쌀을 만들어 이 강토를 지키고 그것을 생업으로 삼아 자식들을 키웠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고물상 폐가전 취급 금지 조처는 서울시의 도시광산 사업인 SR센터의 출발과 그 맥이 닿아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SR컨소시엄의 주체 세력들의 이해와 맞물려 있다는 말이다. 스티커 값이 아까워 거리나 산과 들에 버려졌던 것들을 주워 모아 가치를 만들고 자원화를 이루는 일을 동네 고물상들이 해왔다. 다시 말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가 다하지 못한 폐가전 방치의 필터링 구실을 해왔다는 이야기다.

이런 고물상들을 각 구청에서는 아파트 부녀회 등에 보내는 교육자료 등을 통해 도시 미화와 환경을 해치는 주범으로 몰고 있다. 스티커 값을 아끼고 거기에 값을 쳐주니 ‘참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이다’라고 했던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고물상은 환경의 주범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폐가전 취급 금지를 통해 고물상의 밥그릇을 빼앗는 행위에 이어 우리를 두번 죽이는 행위이다.

냉장고를 고물상 마당에 두면 위험하고 구청 마당에 두면 안전한가? 프레온가스를 배출하는 고물상이 있다면 그것은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단속할 수 있고 그렇게 하면 된다. 도대체 냉장고 컴프레서를 뜯어 프레온가스를 배출하는 고물상이 몇 곳이나 된다고 모든 고물상을 환경의 주범으로 내모는가? 비정규직에도 들지 못한 많은 실업자들이 마지막 패자부활을 꿈꾸며 고물상을 차리거나 1t 트럭 한 대를 가지고 고물상 주변부를 떠돌고 있다.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만들어진 SR컨소시엄은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출발했다. 그와 동시에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행정력을 동원하여 고물상의 가전 취급을 금지시키고 그 물량을 SR컨소시엄이 운영하는 SR센터로 입고시켜 해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몇십명의 고용 창출을 위하여 몇십만의 밥그릇을 빼앗는 행위는 결국 대량 실직이라는 재앙을 경고한다.

침출수의 방지를 위하여 열악한 고물상의 마당 포장을 돕는 저리의 융자제도를 만들고 문제가 되는 가전제품들의 안전한 수거와 환경적 관리를 계도한 뒤 지자체나 중간처리업체가 매입해 주는 상생의 방법이 있다. 그것을 외면하고 행정력이나 법에만 의존한다면 강력한 생존권적 저항을 불러올 것이다.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기층 고물인들을 오로지 법의 잣대로만 재단하지 말고 계도와 지원을 통한 상생의 대상으로 보아 달라는 것이다.

오늘도 1t 트럭에 의지하거나 리어카, 유모차에 생존을 건 사람들이 7월에 시행되는 새로운 폐기물관리법이 어떻게 자신의 목을 옥죌 것인지에 대해 불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버려지는 것들을 모아서 입에 풀칠을 한다 하여 국가로부터 버려지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우리를 상생의 마당으로 불러주길 바란다.

최상진 고물연대 폐가전대책위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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