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4.15 20:00 수정 : 2011.04.15 20:01

우리 아이들에게 비극적 사태가
계속되지는 않을까 불안하다
서남표 총장의 사임과 더불어
새로운 전환은 시작될 것이라 믿는다

오성숙 카이스트 학부모

국회에 소환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의 발언을 보며 카이스트 학부모로서 정말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없다. “카이스트 운영을 잘했다고 본다. 자살에는 복잡한 사인이 많이 있으며, 사퇴할 마음이 없다”고 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 그가 카이스트에 그대로 주저앉을 경우, 우리 아이들에게 또다시 비극적 사태가 계속되지는 않을까 불안하기 짝이 없다.

최근 짧은 기간, 제자 4명이 잇따라 자살한 뒤 카이스트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지성인으로서 최소한의 예의와 양식을 가졌다면 그는 진즉에 사퇴했어야 한다. 국회에서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말한 것처럼, 설사 자신의 정책이 옳았다 해도 서남표 총장은 재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백배사죄하고 물러나 위기와 공황 상태에 빠진 카이스트의 정상화를 앞당기기 위해 기본적인 도리를 지켜야 했다.

학점 0.01점당 6만3000원의 등록금을 차등 부과하고, 1학기 이상의 졸업 연장도 인정하지 않는 엄격한 징벌적 등록금 제도가 그간 얼마나 학생들의 피를 말려 왔는가! “체육, 이것은 영어로 안 한다”고 서 총장이 인정한 것처럼 체육을 제외한 100% 영어몰입강의가 시행되면서 강의를 이해하기도 힘들고, 또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질문하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에 학생 스스로 그 어려운 수학과 물리를 독학해야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계속되면서 학생들과 교수들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를 서 총장은 알고나 있는가! 그가 취임 이후 학생들이 겪어온 고통과 하소연을 조금이라도 귀담아듣고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면, 오늘 제자 4명이 잇따라 생을 마감한 이 초유의 비극적 사태에 처하고서도 “죽음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미국 명문대는 자살률이 더 높다”는 식으로 주장하면서 자리 보전에 급급하는 몰염치한 행위로 일관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자살의 책임이 서 총장의 시장주의적 학사운영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전부터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은 간간이 발생하여 언론에 보도되곤 하였다. 카이스트의 경우, 대부분 초등학교부터 과학고를 향해 매섭게 공부에만 매진해야 문턱을 넘을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었고, 공부 이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곁눈질하지 않은 채 정해진 트랙을 밟아 카이스트에 입학했음에도 학생들을 기다리는 강도 높은 학습량과 수준 높은 강의, 경쟁적 풍토 속에서 그간 적지 않은 학생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서 총장의 발언대로 명문대일수록 경쟁이 심하고 그 속에서 많은 학생들이 힘들어함을 우리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카이스트는 학생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어떤 대책도 제공하지 않았고(카이스트에는 상담실조차 제대로 없었음이 밝혀졌다), 자존심 강한 학생들에게 입학 이후 어느 한순간의 일탈과 이완도 허용하지 않는 징벌적 등록금 제도와 영어몰입강의 등을 강제함으로써 학생들을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 상태로 내몰아왔다.

오늘날 카이스트뿐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서 대학생들이 죽어가고 있다. 대학교육을 국가의 책임으로 하기보다는 시장에 맡겨버리려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 강행됨에 따라 대학 등록금은 해마다 천정부지로 폭등하였고, 경제성장률은 상승해도 일자리는 줄어드는 기현상 속에서 대학 문을 나서도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암울한 현실이 이 땅의 젊은이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 이제 인생 초입의 젊은이들에게 살인적 등록금과 비정규직을 강제하는 신자유주의적 대학정책·노동정책을 폐기하고,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우리 사회에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은 현 정부의 시장주의적 교육정책과 가장 코드를 잘 맞추어온 서남표 총장의 사임과 더불어 시작될 것이라 믿는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