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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15 20:02 수정 : 2011.04.15 20:02

1등급에서 9등급까지 아이들의 몸에
문신을 찍어주는 내신등급제,
“우리가 돼지야?” 큰딸이 투덜거린다이
시스템을 어찌할거나


조영미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덴마크 사람들과 점심을 먹으며 최근 카이스트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이냐고 묻는 그들에게 한마디로 ‘시스템’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카이스트 내부의 징벌적 등록금 제도, 전과목 영어수업 등 경쟁을 부추기는 시스템이 학생들에게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기마다 중간고사·기말고사를 치르며 점수와 등수를 매기고, 중학교부터는 과목당 전체 석차가 매겨진 성적표를 받고, 중학교 2학년부터는 내신 등급이 매겨진다. 내신 등급과 수능 점수를 기반으로 일류 대학에 자식을 보내는 것이 대한민국 엄마들의 최대 관심사이다. 그런 시스템에 적응된 수재들만 모인 카이스트에서 여덟명 중 한명은 징벌적 등록금 제도의 대상자가 되어 적게는 6만원부터 많게는 600만원의 등록금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자라면서 전교 1, 2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징벌적 등록금을 내야 하는 대상자가 되었을 때 느낄 모멸감과 패배감은 엄청난 것이리라 짐작이 된다. 이런 시스템적 요인에 대해 얘기하자 덴마크 사람들이 너무도 어이없어 한다.

자신들은 사지선다형 문제가 제출되는 시험을 치러본 적이 없다고 한다. 석차가 매겨진 성적표는 상상할 수도 없다고 한다. 시각형, 청각형, 운동감각형, 논리사고형의 네가지 기준으로 아이들의 특성을 분류해서 자신의 특성과 관심에 맞는 분야로 유도해주는 것이 교육의 최대 목표이지, 대학 학위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한다.

자신이 현재 돈을 벌고 있고, 남편이 석사 과정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덴마크인 여직원은 남들보다 더 잘나야 하고 더 나아져야 한다고 은연중에 압력을 받는 우리 사회의 ‘체면과 위신을 잃지 않으려는’ 문화 탓에 이런 경쟁적 학업 시스템이 만연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남편도 25살이 되어서야 공부에 진정으로 흥미를 느껴서 계속 공부를 하려는 선택을 한 것인데, 만일 성적과 등수로 평가를 받았다면 진작에 공부를 포기해버렸을 것이라고 했다.

덴마크 사회도 세금이 높고, 집값이 비싸고, 인건비와 교통비가 비싸기 때문에 부부 모두가 직장을 다녀야 겨우 집 장만을 하고 여행이라도 다닐 만하다고 한다. 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많이 타게 된 것도 기본적으로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자동차 소유에 대한 세금과 유류비가 비싸기 때문에 절반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하지만 교육비·의료비가 전액 무상으로 정부에서 제공되며 기본 자녀 양육비가 나오기에 극단적인 가난으로 떨어질 위험이 없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인 우리 큰아이가 학교 밴드부에서 베이스기타를 치고 있고 아무런 학원도 보내고 있지 않다고 하자 모두들 박수를 쳐준다. 자신이 원하는 활동을 하며 적성을 찾아나가는 것이 바른 교육법 아니겠느냐고. 하지만 이 평범한 대한민국 엄마는 “이번 중간고사 시험 성적이 나오면 성적 봐서 학원 보내버릴 거야”라고 아이에게 협박하는 엄마이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몇점을 맞았는지, 그 점수면 반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지 묻곤 한다. 중간고사·기말고사 뒤에 나오는 등급이 매겨진 성적표가 ‘현재 이 성적으론 서울시내 대학 어느 학과에도 들어갈 수 없음’이라고 알려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사지선다형 문제를 없애야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논리를 풀어내는 방식을 훈련하게 된다. 성적으로 석차 매기기를 그만두어야 엄마들이 학기말마다 ‘석차가 왜 이 모양이니?’ 하며 아이들을 닦달하지 않게 된다. 내신등급을 매겨 대학 선발에 적용하는 시스템을 고쳐야 학기마다 치러지는 중간고사·기말고사에 목을 매지 않게 된다.


이런 식의 평가 과정이 없으면 노력을 하지 않게 되고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잃게 된다고 하는 것이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과 같은 교육자들의 기본 생각인가 보다. 그러나 우리도 시스템적으로 창의교육을 한번 실행해본들 어떠랴. 수없이 바뀌어온 대학입시제도 아닌가. 한번 맘먹고 시스템을 싹 바꿔봤으면 싶다. 그래야 나 같은 대한민국 엄마들이 더는 성적표를 보며 자신의 아이와 다른 아이들을 비교하며 흔들릴 여지가 없어질 것 아닌가.

“성적으로 석차를 매기고 등급을 매기다니 우리가 돼지야?”라고 큰딸이 투덜거린다. 1등급에서 9등급까지 과목마다 아이들의 몸에 문신을 찍어주는 내신등급제, 이 시스템을 어찌할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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