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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19 20:14 수정 : 2011.04.19 20:14

김 본부장의 막말은
이 나라 엘리트가 농민에 대해 갖는
뿌리깊은 편견과 농업 천시 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노동규 서울시 강남구 삼성2동

지난 금요일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행정부 관료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에게 “공부하라” 타이르더니 급기야 호통을 쳤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심사·표결하기 위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회의석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에게 “강 의원, 공부 좀 하고 말하세요”라고 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잇따라 드러난 국가간 협정문 번역 오류로 세계적 망신을 산 장본인이다. 소위원회 위원이 아닌 강 의원은 이날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참관해 농업피해보상 대책을 따지던 중이었다. 둘 사이에 어떤 사감이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취재진도 있는 공개석상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타이르다 호통치며 언쟁하는 관료를 보고 모욕감을 느낀 이가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

장관이 국회의원더러 “미친놈”이라고 한 게 얼마 전이고, 대통령마저 수차례 국회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 것을 보면 이 정권의 국회 무시는 병증이 깊다. 나날이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에서 대의민주주의 아닌 다른 방식으로 국민의 의지를 표현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음을 인정한다면, 국민을 대표하고 대의하는 국회의 역할과 기능이 더 커져야 마땅한 것을, 오히려 오늘 한국의 의회는 이렇게 참담한 무시를 당하고만 있으니 딱하다.

김 본부장은 강 의원을 칭할 때 의례적인 ‘님’자조차 붙이지 않았다. 청문회를 포함해 그동안 숱하게 열린 국회 회의에서 일부 ‘뻣뻣한’ 공직자가 더러 등장하긴 했어도 그 흔한 존칭마저 생략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선출된 대표에 대한 존경과 존중을 담은 관례인 탓이다. 아무리 존경하지 않아도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님’이라 칭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니 “공부 좀 하라” “말조심하라” 호통치는 관료 앞에 정작 모욕감을 느꼈어야 할 사람은 곁에서 잠자코 있던 동료 의원들이다. 당을 떠나, 국민이 위임한 권위를 이렇게 우습게 만들어도 되는 것인가.

김 본부장의 막말은 또한 이 나라 엘리트가 농민에 대해 갖고 있는 ‘농민 출신 의원은 무식하고 공부도 안 할 것’이라는 편견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여기에는 ‘농민이니까 누구보다 농민을 잘 대변할 것’이라는 지극히 소박하지만 늠름한 생각을 갖고 강 의원을 뽑은 유권자까지 무시하는 오만함이 깔려 있다. 휴대전화와 자동차 한 대 더 팔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농민을 챙기라고 국회에 보내진 강 의원에게 “공부 좀 하라”고 호통을 친 김 본부장이 ‘폭로’한 건 이렇게 한국 엘리트의 뿌리 깊은 농업 천시 의식이기도 했다.

가장 큰 책임은 지난해 말 예산안 ‘날치기’에서 보듯 행정부의 거수기를 자처해 국회 권능을 스스로 팽개친 거대 여당에 있다. 또 이렇게 되기까지 심층 원인 분석보다 폭력 중계에 더 급급해 국민의 정치염증만 돋운 언론 또한 할 말이 없을 게다.

그런데 김 본부장은 ‘퍼주기 협상’이라 비판받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획기적 딜”(오바마 미국 대통령)로 이끌어 미국으로부터 “자유무역의 권위자”란 찬사와 함께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자리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는 구한말 매국의 대가로 작위를 받은 친일파를 연상케 하는데, 국회의원에게 호통치며 그가 강조한 ‘공부’란 도대체 어떤 공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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