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한
‘광역’자치단체로의 분산이었는데
언제부터 전주와 진주라는
도시간 유치전으로 변질되었을까?
유남희 전북대 산학협력단 교수
노무현 정부 시절,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적인 실천방안으로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을 지방의 광역자치단체에 골고루 이전하도록 하는 정책이 확정되었다. 당시 한국토지공사는 전북으로, 대한주택공사는 경남으로 이전하도록 결정되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엘에이치(LH)공사로 통합됨으로써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였다. 전북과 경남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수도권 공공기관들의 이전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두 지역으로 이전되기로 한 기관들이 하나로 통합되는 바람에 두 지역이 통합 엘에이치 본사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건 총력전을 펼치게 된 것이다.
전북은 애초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의 취지와 정당성을 고려한 분산배치안을, 경남은 통합된 기관의 효율적인 통합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일괄배치안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양쪽의 주장이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긴 하나, 수도권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지방 재정자립 보전을 염두에 두었던 것임을 상기해보면 특별한 고민거리가 내재하여 있다. 통합 엘에이치 본사가 일괄이전되는 지역은 당초보다 ‘두 배’의 재정 확보를 성취하는 것이요, 유치에 실패하는 지역은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약속되었던 공공의 혜택으로부터 유일하게 배제되는 박탈감을 떠안게 되는 일이다.
신규 국책사업인 동남권 신공항 무산에 대한 정책적 배려로, 혹은 전북지역의 새만금사업 존재를 이유로 경남 일괄이전의 형평성을 주장하기도 하나, 이는 참으로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새만금이 언제 실현될 실용의 가치인가? 더구나 새만금을 형평의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면, 헌정사 이래 영남지역의 지속적인 산업화 집적은 더욱 심한 형평의 비교 대상이 될 일이 아니겠는가?
지역의 대결구도를 조장하거나 지역감정의 부끄러운 초상을 끄집어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 앞에 결코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다. 다만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 먼저인 사람들이 주인인 나라에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필자가 이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분쟁 한 축의 지역인으로서 그 지역이기주의를 달성하는 데 이바지해 보려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우리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세상의 ‘따뜻한 정의’에 관해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의 하위 개념인 지역내총생산(GRDP)이 경남과 전북 사이에 43조원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을까? 또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은 수도권 집중을 방지하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광역’자치단체로의 분산을 목표로 한 것이었는데, 언제 전주와 진주라는 도시간 유치전으로 변질되어버렸을까? 많은 언론과 정치인들의 애틋한(?) 노력이 기기묘묘하기만 하다.
휴일날, 아빠의 사무실에 같이 나와서 공부하던 초등학교 6학년인 셋째 아이가 엘에이치 본사의 경남 일괄이전이 잠정 결정되었다는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는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그럼 우리 지역은 정말 발전하기 더 힘들겠네요? 왜 나라에서 정한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우리보다 훨씬 잘산다는 곳에서 우리 것까지 다 가져간대요?”
평소 작은 질문에도 자상한 설명을 이어주던 아빠가 이번엔 아무런 말을 못하고 곤혹스러워하며, 세상의 정의로움의 기준과 이치를 정당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자식 교육의 한계를 절감하기만 한다. 하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세상의 희망과 상식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날을 다시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욕심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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