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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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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토론의 주제는 ‘교육’이 아니라 ‘입시’다. 성공이란 명문대학에 합격하는 것이라는 암묵적인 전제 아래 오직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만 행해지는 공교육과 사교육 간의 효율성과 결과적 우위를 논하는 것은 교육이 아닌 입시의 영역이다. 교육의 측면에서라면, 학생들이 지식과 지혜라는 두 요소를 어떻게 조화시키도록 지도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혜라는, 훨씬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요소는 안중에도 없다. 그저 대단찮은 지식 암기와 1점이라도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나는 현행 입시체제의 승리자다. 요즘 유행하는 경제적 논리로 따지면, 사교육 한번 받지 않은 최소비용으로 수능에서 원하는 점수를 얻고 이른바 명문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는 최대효용을 얻었으니, 꽤나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사교육의 공급자로서 수요자들을 흡족하게 해주고 생활비를 벌었으니, 현 입시제도에 절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 느끼는 것은 무기력함과 안타까움뿐이다.
고등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주어지는 자결권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미래를 개척하려면, 지난 십수년간 치열하게 쌓아온 언어·수리·외국어 등의 ‘지식’보다 논리적으로 시비를 가리고 쏟아지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지혜’가 훨씬 더 절실하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절대다수의 대학생들은 무의식적으로 ‘이게 정답이야’ 하고 가르쳐주는 권위자를 매 순간 기다리고 있다. 대학생들의 투표참여가 한심할 만큼 저조하고 여러 사회문제들에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찬반의 입장조차 고민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결여된 채 중립을 지키는 것과 판단을 못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튜터의 기능이 압도하는 현 교육의 결함 때문에 발생한다. 튜터는 말 그대로 학습을 도와주는 교사다.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학생들은 튜터의 도움을 받아 기계적으로 편하게 공부한다. 스스로 그런 관계를 지향하기도 하고, 시대가 그런 관계를 강요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우등생들은 가르쳐주는 것을 익히고 외우는 데엔 유능하지만, 스스로 방법을 모색하고 비판적으로 응용하는 데에는 무능하다. 벽에 부딪히면 치열하게 사색하고 문제의 본질을 찾아 벽을 뛰어넘으려 하기보다는, 권위자로부터 사태 수습을 위한 도움을 받고 편하게 벽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한다. 각자 웅대한 포부를 간직한 채 대학생활을 꿈꾸던 인재들은 현실의 벽을 넘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앞서 포기하고 시류에 편승한 선배들의 합리적 무지를 뒤따라 습득한다. 결국 학생들은 무기력해지고,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질문보다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현실적이고 피상적인 질문에 빠져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
이런 현실에서 학생들은 학문을 할 수 없고, 행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대학 이전의 교육을 논하면서 어떻게 해야 더 효율적인 튜터링 서비스를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만 고민하고 있으니, 선험자이자 아직 지혜 탐구를 포기하지 않은 ‘이상주의자’로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멘토다. 단기적인 성과와 지식 습득에 연연해 제 존재가치를 잃고 사회의 도구가 되어가는 학생들을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고민하여 미래를 결정하고 행복을 좇을 수 있도록 이끌어줄 멘토링이 필요하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우위 논쟁이 좀더 확장되어, 큰 꿈을 꾸는 학생들이 지식과 더불어 지혜를 습득하고 나와 같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혹은 이런 고민이 ‘이상’이 아닌 ‘현실’적 고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의식적 개혁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개혁 논의가 너무 급진적이라면, 적어도 교육문제를 걱정하는 주체들이 이런 관점을 고민이라도 해보아야 한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대학에 합격한 뒤, 무기력함 속에서 평범해져버리는 혹은 무기력함조차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효율적인 튜터링 수단을 찾아 헤맬 때가 아니라 효과적인 멘토링 방안을 강구할 때다.
위경환 고려대 경영학과 2학년 휴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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