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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01 19:26 수정 : 2011.07.01 19:26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지방 소재 대학교수

이 땅의 자연과학자, 다시 말해 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 등 순수과학 분야의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 중에, 매우 환경이 좋은 소수 명문대학에 재직중인 이들을 제외하면 이 글을 쓰는 나와 어느 정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대에 대학에 들어갔고, 전공 학과를 택할 때 꽤나 많은 고민을 하다가 자연과학자의 길을 가게 된 이들, 그들 중에 이른바 명문대학 교수라는 명예나마 가지지 못한 이들에 관한 얘기다.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 쉽게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시절 공학자도 아닌 순수과학자의 길을 택한 많은 이들은 그때도 돈벌이 안 되고 어렵고 화려하지도 않고 끝도 보이지 않는 학문의 길에 들어설 때에는, 자연법칙의 경이에 매료되고 이를 탐구하고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겠다는 소망과 거기에서 얻어질 정신적 만족감을 기대하였을 것이다. 매일같이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하면서 새로운 논문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수준급인 국제학술지에 발표하면 세상의 극소수의 사람들만(왜냐하면 세상에는 특정 분야의 과학자들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직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읽는 일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그래도 자신이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는 데 매우 작은 기여나마 하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그런데 오늘의 대학을 보면, 아니 더 정확히 우리 사회를 보면, 기업체나 어디 어디서 돈을 끌어오는 일이 최고의 가치로 대접받는다. 대학의 운영에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전적으로 대학 사회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더욱이 대학생들은 돈벌이 안 되고 어렵기만 한 자연과학을 거의 누구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현실에서 매우 큰 좌절감을 느낀다.

신문의 머리기사에 누구누구는 무엇을 해서 연간 얼마를 벌어 성공했다느니 하는 기사를 읽으면 나는 세상에서 매우 바보스런 삶을 살아온 사람 같다. 인생의 절정을 한참 넘어서 자신의 삶에 확고한 주관을 가져야 하는 나이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과연 세상을 제대로 살아왔는가’ 하는 것이다. 인생의 3분의 1 이상을 바쳐서, 어떻게 보면 삶의 안락과 즐거움을 상당 부분 유보하고 연구를 한답시고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지내는 것의 결과가 무엇인가, 과연 나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 무슨 자그마한 공헌이라도 했는가, 돈이 최고의 가치인 시대에 내가 하는 연구가 무슨 쓸모가 있는가, 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버는 직업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등등 끊임없이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솔직히 나도 내 아이들이 순수과학자의 길을 가겠다고 말하면, 별로 기뻐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일부분의 과학자들은 어느 정도의 학문적 기반을 다지기 전에 재빨리 과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기업체나 정치권, 관계의 인사들과 친분 쌓기에 바쁘고, 그래서 제법 큰돈을 끌어오고, 세상에서 제법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융통성이 없고 고집스런 과학자는 이들을 보면서 초등학교 국어책에 나오는 황금알을 낳는 닭 이야기를 떠올린다. 황금알에 만족 못하고 그 알을 낳은 닭을 잡아 결국 아무것도 낳지 못하게 되는 이야기다. 당장 돈 따오기에 몰두한 나머지 그들의 학문적 지식이 바닥이 나면, 그들은 무엇을 우리 사회에 돌려줄 것인가?

그럼에도 묵묵히 과학자의 길을 가는 이들도 많다. 돈은 못 벌어도 좋지만, 순수과학의 길을 가는 이런 이들이 지키고 싶은 학문적 자존심만큼은 끝내 지킬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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