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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06 19:17 수정 : 2011.07.06 19:17

신선식 교사·전남 완도군 노화읍 내리
장만채 전남교육감에게 드리는 공개 제안서

장만채 교육감님, 안녕하세요?

전남 교육의 발전을 위해 늘 고민하시는 교육감님께 먼저 고마움을 전합니다. 저는 완도 넙도라는 조그만 섬에서 중학교 아이들과 사회를 함께 공부하는 교사입니다. 2009년에 치러진 일제고사에 저항해 체험 학습단을 조직하고 이끌었다가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았고, 2010년에 넙도로 강제 발령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이곳에서 15명의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깊이 소통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게 더 많은 삶에서 보람을 얻고 있습니다.

7월12일에 또 일제고사가 치러진다고 하네요. 일제고사를 생각하니 지난해 7월이 생각납니다. 2010년 7월12~13일, 저는 20여명의 교사·학생·학부모·지역민과 같이 도교육청 앞에서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있었습니다. 교육감님께서는 ‘나는 문제점은 있지만 일제고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설득시켜 봐라. 언제든지 토론의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꼭 토론의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말씀을 드렸지요. 교육감님께서는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그 자리에 참여한 ㅎ고 학생들에게 ‘국가에서 예산을 들여 너희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왜 그런 혜택을 버리느냐’고 하셨습니다. 일제고사에 대한 교육감님과 저희 교사들의 인식의 차가 너무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1년이 지나 다시 일제고사의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초등학교를 비롯하여 0교시 수업, 야간 자율학습, 놀토 수업, 문제풀이 수업이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일제고사 결과를 학교성과급 자료로 사용하면서 학교간 경쟁이 본격화된 탓에 나타나고 있는 파행의 실태입니다. 해가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교육청에서는 ‘학업성취도 평가계획’을 통하여 불참 학생은 무단결석 또는 무단결과 처리를 하고 거부 교사는 징계를 하라는 전달연수를 하고 있습니다. 2010년과 비교해 전향적으로 달라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개악되고 있습니다. 교육감님은 ‘현장교사와의 대화’를 통하여 언제나 ‘나를 설득하라’ 하고 다니신다 들었습니다. 1년이 다 되도록 약속한 토론회는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일방통행인 ‘장만채 신문고’로 소통을 하자는 말씀인가요? ‘나를 설득하라’가 아니라 ‘같이 대화해 보자’는 인식이 필요하지 않은가요?

오는 7월12일! 저는 또다시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도교육청 앞에서 일제고사의 부당함에 항의하는 팻말을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일제고사는 학생과 학교, 지역 교육청의 줄세우기를 위해 필요할 뿐입니다. 각기 다른 교육 환경과 다양한 특성을 가진 전국의 모든 학생들을 똑같은 문제로,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어떠한 현실적 이유를 갖다 붙인다 해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대다수 ‘선진국’이 일제식 평가를 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미국·일본 등 극소수의 선진국이 일제식 평가를 하지만 학생이나 학교의 선택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강제로 모든 학교와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그 성적을 공개하고, 성적에 따라 학교 평가를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일제고사는 학생과 교사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협력과 공동체는 사라지는 정글 법칙만을 요구하는 일제고사가 갖는 교육적 정당성은 무엇입니까? 일제고사가 존재하는 한, 일제고사로 교사와 학생을 줄세우기 하는 한 ‘무지개’는 뜨지 않습니다. 교육감님이 전남 교육에서 의미를 두고 있는 ‘무지개 학교’는 또다른 방식의 경쟁을 유발하는 ‘또 하나의’ 학교가 될 뿐입니다. 새로운 학교를 원하신다면 일제고사의 비교육적 측면을 파악하고 폐지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교육감님! 오는 12일 실시하는 전국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표집으로 실시해 주십시오. 학생과 학교의 선택권을 인정해 주십시오. 일제고사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여 현장교사들과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 주십시오. 비교육적인 일제고사의 폐지를 교육과학기술부에 요청해 주십시오.


7월12일. 일방적으로 듣고 판단하는 제왕적 리더십이 아닌, 교육 주체들과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대안교육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진정한 ‘진보 교육감’의 면모를 유감없이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긴 글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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