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08 19:30
수정 : 2011.07.08 19:30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목재고고학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는 금송(金松)이란 나무 한 그루가 최근 갑자기 논란의 한가운데 서 있다. 지난 1일 서울행정법원은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혜문 스님이 제기한 ‘금송 옮겨심기 청구’를 “행정처분의 영역이 아니다”라며 기각했다. 이 나무는 현충사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 하여 오래전부터 논란이 있어왔지만 행정소송이 제기되어 판결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혜문 스님이 문화재청에 먼저 문제제기를 하였으나 문화재위원회에서 거부당했다.
도대체 나무 한 그루가 왜 이렇게 문제가 되는가? 우선 금송이란 나무의 내력부터 알아보자. 흔히 금빛 나는 소나무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지만, 소나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별개의 나무다. 식물학적으로는 낙우송과(科)의 금송속(屬)으로서 세계의 다른 어떤 곳에도 없고 오직 일본열도의 남부지방에만 자란다. 키가 수십m에 지름이 두세 아름을 훌쩍 넘게 자라는 큰 나무다. 목재는 잘 썩지 않으며 특히 습기가 많은 장소에 쓰더라도 오래 견딜 수 있다. 그래서 궁궐의 기둥, 관재 등에 쓰이며 충남 공주 무령왕릉의 관재도 금송을 수입하여 만들었다. 일본인들이 예부터 신성하게 여긴 나무로서 그들의 역사책 <일본서기>에도 등장하며 일본 왕실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일왕이 참석하는 기념식수에서 금송을 흔히 심으며, 최근에는 왕위계승 서열 3위인 히사히토 친왕의 인장을 금송으로 만들기도 했다. 한마디로 금송은 자라는 곳부터 쓰임까지 일본을 떼고는 말할 수 없는, 일본을 상징하는 나무다.
이런 일본 나무가 우리의 대표적 항일유적지인 충남 아산 현충사와 금산 칠백의총을 비롯하여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에서도 4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뜻있는 분들은 끊임없이 금송이 있어야 할 위치가 아님을 문제삼아 왔지만 문화재청은 요지부동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기념식수한 나무라서 그 자체가 문화적 값어치가 있으므로 손댈 수 없다는 논리다. 20세기 초 지금의 청와대 자리인 조선총독부 총독관저에는 그들이 좋아하는 금송을 심고 일제강점기 내내 가꾸어오고 있었다. 1971년 박 대통령이 청와대 뜰의 금송을 현충사 등 3곳의 유적지마다 한 그루씩 내려보낸 것이 지금 현충사의 금송이다. 박 대통령이 금송이란 나무의 내력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무의 원산지와 역사·문화적인 배경을 알아내는 일은 관련 전문가의 몫이다. 한 나라를 통치하는 데 하찮은 나무의 내력까지 대통령이 알 필요도, 알 수도 없었을 터이다. 더욱이 그는 걸핏하면 친일경력으로 시달림을 받아왔는데, 일본 냄새가 너무나 진한 금송을 일부러 심게 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필자를 포함해서 금송을 심은 장소가 적절하지 않음을 지적하는 분들도 당장 금송을 베어내서 없애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위치가 너무 민망한 자리에 있으니 조금 옆으로 옮기자는 주장이다. 현충사의 금송은 본전 오른쪽에 있어서 나무가 자라면 이순신 장군의 영정에서 항상 내려다보이는 곳이고, 칠백의총의 경우 사당인 종용사(從容祠) 바로 앞에 있어서다. 특히 칠백의총은 임진왜란 때 전사한 조선 의병 700인의 혼을 모신 곳이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파괴한 비석을 모아서 만든 우리의 가장 뼈아픈 항일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이런 곳의 금송을 조금 옮겨 심는다고 문화재청에서 말하는 대로 ‘문화적인 값어치’가 결코 손상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문화유적지를 보호하고 아끼는 이유는 당시를 살다 간 선조들의 얼과 정신을 이어받고 오늘의 우리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금송을 보기 좋은 조경수로만 생각하면 될 일을 무슨 나무의 국적까지 따지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나무의 내력을 조금만 안다면 일본과 상징성이 겹치는 금송의 위치가 자꾸 눈에 밟힐 것이다. 잘라버리자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위치를 조금만 조정하자는 의견 정도는 받아들이는 문화재청의 유연성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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