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13 19:34
수정 : 2011.07.13 19:34
임근식 자영업·전남 목포시 용당동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어찌하다 이른바 공안 및 노동사범으로 몇차례 구속기소되었던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 당시 법률지식이 전혀 없던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웠고 귀찮았던 일은 도합 한달이 넘도록 경찰과 검찰에서 이중으로 똑같은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검찰청을 오락가락하면서 신기했던 사연은 경찰이 피의자 신문조서에 적어 넣은 범죄행위의 해당 법조항이 검찰에 가니 딱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었다. 물론 검사가 내가 처한 억울한 상황을 간파하고 무지막지한 경찰권의 횡포로부터 힘없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지켜주거나 내 처지를 딱하게 여겨 선처한 결과는 결코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는 적어도 노동탄압 분야에서는 정보과 형사들이나 공안 검사나 모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용호상박이었더랬다. 물론 공권력이 노골적으로 기업주 편만 들던 군사정부시절의 호랑이 담배 먹던 이야기이다. 지금이야 그러겠는가.
어쨌든 구속 경험이 생기다 보니 검찰과 경찰로 나눠진 수사체계란 게 뭔가 할 말이 있는 피의자나 피고인 입장에서 보면 조금 귀찮기는 해도 나름 합리적인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억울하고 손해본다는 생각이 들면 경찰 조사 과정에서 좀 참았다가 검사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는 요령도 터득했다. 나아가 경찰서에서 밤낮으로 달달 볶이면서 지장을 찍은 조서는 재판에서 별 볼 일 없고 오로지 검찰 조서만이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는 형사소송법 내용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검사가 경찰 조서 내용을 뒤집고 처음부터 다시 시비곡직을 가려주는 일은 현실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형사법전에 써 있다는, 검사가 인권 옹호자라는 원칙을 법전 밖 세상에서 믿는 국민들은 적어도 내 주변에는 별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경찰이 무리하고 강압적인 수사를 해서 생긴 억울한 사연을 검찰에서 역전시킬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 자체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나라 형사법 제도상 검사가 경찰 수사를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으며 형식상 수사가 검찰과 경찰 단계로 이원화돼 있는 사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정의롭고 공정하게 발동된다면 경찰권을 통제해서 국민의 인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이론과 형사소송법 관련 규정에서나마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통제와 교정 절차가 있는 편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는 백번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검사가 기소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기소 단계에서 불기소처분을 해서 경찰이 잘못한 수사를 바로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그 단계까지 피의자는 여러 차례 조사와 소환, 감시 등 온갖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13만명에 달한다는, 단일로는 최대의 대국민 공권력 조직인 경찰의 물리력과 정보력 등은 막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예전에 시골 지서에 근무하는 경찰관조차 관내 주민들의 시시콜콜한 신상과 동선을 쫙 꿰고 있는 놀라운 정보력을 직접 겪은 적도 있다. 아무 잘못 없이도 의경의 검문 요구만 받아도 일단 움찔하는 게 민초들의 현실 아닌가.
최근 형사소송법 개정에서 경찰이 검찰을 따돌리고 실리를 챙겼다고 한다. 국민의 소중한 인권이 마치 힘만 세고 미덥지 못한 두 기관 사이에서 전리물이 된 것 같아 보기가 편안하지 않다. 더구나 수사권 문제만 불거지면 서슴없이 집단행동을 하는 일부 경찰들의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 솔직히 따져보자. 과도한 경찰권 행사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받을 때 경찰관이 단 한명이라도 경찰청 앞에서 이번처럼 1인 시위를 한 적이 있었는가. 공부 잘하고 머리 좋다는 경찰대 학생들이 단체로 인권보장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벌인 적이 있었던가. 촛불시위나 노동현장, 용산참사 때 무리한 진압규칙이나 집시법 규정을 개정하라며 뜻을 모아서 국회에 청원할 생각이라도 해 본 경찰관은 과연 몇 명일까. 경찰이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검찰을 질타하는 국민의 여론이 경찰이 그동안 잘했기 때문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검찰이 보인 오만하고 권력의 눈치만 보면서 ‘부강억약’(扶强抑弱)하는 작태에 대한 작은 심판이었을 뿐이다.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 나는 이른바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대해서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이들은 최근 공무원 선호 현상으로 경찰에 대졸 우수인력이 늘어나고 검찰에 못지않게 자질이 향상되었으므로 이제는 믿고 수사권을 맡겨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찰의 양과 질적 능력이 과거에 비해 일취월장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경찰권에 대한 통제는 더욱 절실하다. 무엇보다 경찰권은 국민들이 먹고사는 데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는 위협적인 공권력이기 때문이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검찰청에 있는 검사 영감을 대면할 일은 사실 별로 없다. 하지만 동네 지구대 순경한테 아쉬운 소리 할 일은 많은 법이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