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25 19:13
수정 : 2011.07.25 19:13
구중서 문학평론가·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서울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 4·19 혁명에 대한 송시가 새겨진 시비들이 서 있다. 이 4·19 시들에 대해 문학평론가 윤지관 교수가 ‘애도의 정치학’이란 제목으로 논문을 써 지난 6월10일 한 심포지엄에서 발표했으며, 그 내용의 요지가 <한겨레> 6월16일치에 소개되기도 했다.
논문의 관점은 묘역의 4·19 시들이 대체로 4·19 혁명정신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비판이다. 4·19 혁명은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변혁 운동들의 원천이다. 필자는 윤 교수의 이 논문이 4·19 혁명의 본질을 옹호하는 순결한 정신에서 발상되었다고 보며, 정대하게 역사의식을 추구하는 비평적 열정을 존중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정의를 옹호하는 입장일수록 문제의 심층을 수렴하는 차원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윤지관 교수의 이번 논문은 그 본의가 어떠하든 비판의 논리가 일방적이며 이분법적 도식을 전제하고 있다.
4·19 묘역을 국립묘지로 확장하고 성역화한 문민정부는 신군부 세력과 야합한 정권으로 이중적 정체성을 지녀, 한편으로는 4·19 혁명의 정통성을 차지하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장기적 변혁 에너지를 애도 속에 가두려는 정치적 전략을 썼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5·6공의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을 구속해 투옥시키기도 했다.
12개 시비 중 8편의 시는 4·19 당시나 직후에 발표된 것인데 혁명의 현장성을 반영한 효과가 있다. 문제는 이 시들도 애도 의례 속에 혁명의 에너지를 매장하는 전략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이 논문의 주장이다.
특히 매장 역할의 전형적인 예로 구상 시인의 시 <진혼곡>을 예시하고 있다. 시 속에는 “형제들이 뿌리고 간 목숨의 꽃씨야/ 우리가 기어이 가꾸어 피우고야 말리니”라고 한 것이 있는데 이것이 의례적이고 허식적인 어구로, 매장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원작에 맞지 않는 왜곡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구상 시인은 4·19 직전인 1959년 ‘민주고발’이라는 논설을 쓰고 강연을 하는 등 반독재 투쟁을 하다 옥고를 겪었다. 이러한 구상이 어떻게 4·19 혁명을 매장하려 할 수 있는가. 조지훈도 시 <너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로 4·19 현장에 참여한 대표적 시인이다.
다만 4·19 묘지에 김수영·신동엽·신동문 등의 시비가 들어서 있지 않은 것은 역대 정부 문화정책의 불찰이다. 진정한 민주주의에 의해 시가 본연의 숭고한 위상에 설 날이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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