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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01 19:25 수정 : 2011.08.01 19:25

구중서 교수의 비판에 대한 재반론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죽음에 대한 애도는 개인의 일상이든 집단적인 체험으로든 우리 삶에서 늘 겪는 과정이고 특히 고통의 근대사를 겪은 사회일수록 절실하다. 애도를 통해서 우리는 죽은 이를 잊고자 하는 한편 그들이 못다 이룬 뜻을 되새기게 된다. 필자가 덕성여대 지역문화연구센터 주최의 심포지엄(6월10일)에서 국립4·19민주묘지에 세워진 추모시비들을 애도와 정치의 관계라는 맥락에서 살펴본 것은, 4월 혁명이 우리 역사에서 어떻게 기억 혹은 망각되는가를 짚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대해 지난 7월26일치 ‘왜냐면’ 칼럼 ‘시와 혁명의 관계-윤지관 교수의 4·19시 비판을 보고’에서 원로 평론가인 구중서 선생께서 몇 가지 고마운 지적을 해주셨다. 필자의 논문이 ‘혁명의 본질을 옹호’하려는 정신에서 나온 점은 인정되나 ‘일방적이고 이분법적인 도식’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경계는 새겨듣고자 한다. 현재 4·19묘지에 인각된 대부분의 추모시들이 애도의 진정한 의미에 미달이라는 비판이 자칫 이 시인들에 대한 전면적인 폄하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고, 그것이 필자의 뜻도 아님을 밝히고 싶다.

필자가 살피고자 한 바는 문민정부가 1990년대 초 4·19묘지를 성역화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이 기념비들을 통해 혁명의 의미를 축소하고 그 현재성을 약화시켰는가 하는 것이다. 김수영과 신동엽 등 현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담고 혁명을 민족사의 흐름에서 이해하는 대표시들은 모두 빠지고 4·19 직후 흥분된 분위기에서 쏟아져 나온 의례적인 수준의 추모시들이 대거 선별된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4월 혁명이 이후의 민주화와 사회변혁의 과제에 가지는 함의를 당시의 집권세력이 올바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민주주의의 성역에 오랜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몸소 실천했던 시인들 대신 순수시를 내세우고 문학의 사회참여에 반대해온 시인들이 대거 자리를 차지한 것도 문민정부 시대의 민주화 수준을 말해주는 지표다.

구중서 선생의 바람처럼 “진정한 민주주의에 의해 시가 본연의 숭고한 위상에 설 날”이 오려면, 애도가 망각의 의례가 아니라 혁명의 본뜻을 우리 현실에 다시 일깨우는 진정한 시적 업적과 맺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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